소 개혁정책 성사 불투명/미 학술지 익명 논문 파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방국가 고르바초프 지원은 부질없는 짓/개혁은 공산당 살기위한 임시적 방편일뿐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소재한 미국학술원이 발간하는 『디덜러스』 차기호는 익명의 필자로 소련개혁의 실패 가능성과 서방의 대소지원에 회의를 표시하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의 필자는 단순히 「Z」라고만 표기돼 있다.
과거 전후 미국의 대소정책 입안자였던 조지 케넌이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미국의 대소정책 기본을 밝힌 논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X」라고 밝힌 선례를 상기할 때 이 논문은 상당한 거물 론객이 썼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이 논문의 요약.<편집자주>
1989년은 공산주의의 종말적인 위기가 시작되는 해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소련의 의도대로 환영받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그들이 완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체제의 위기를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벼랑끝에 몰려있는 레닌식체제는 폴란드나 헝가리ㆍ동독ㆍ체코ㆍ루마니아처럼 내부로부터 무너져내리거나 이를 피하기위해 등소평처럼 무리하게 군사행동에 의지할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련공산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라는 임시방편이 절실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대체하기에는 지나치게 초라한 것이다.
레닌주위와 시장경제원리사이에 절충안은 있을수 없으며 볼셰비즘과 민주정부사이에 타협여지는 없는 것이다.
시장자유화와 민주화는 궁극적으로 시민사회의 부활을 가져오며 이런 시민사회는 법에의한 통치를 요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그 자체로서는 종국적인 해결책이 될수 없으며 그같은 탈출구를 향한 노력의 일환일 뿐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이 만약 경제적으로는 효율성확보,정치적으로는 민주적인 공산체제의 창출을 뜻하는 것이라면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련의 현 체제를 구원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한 서방국가들의 모든 원조는 부질없는 짓이 될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우리의 도움이 미칠수 있는 범위밖에 서 있다. 어설픈 원조나 도움은 소련국민들의 진짜 이익을 거슬러 세계안정에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 70년대에 있었던 서방의 대폴란드 원조의 교훈에서 볼수 있는 바와같이 소련정부에 대한 원조는 고통을 연상시킬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이 일당국가와 공산통제경제에서 민주국가로의 전환과 자유시장경제로의 이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하더라도 대답은 여전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페레스트로이카가 추구하는 바가 결코 그와같은 전환과 전이에 있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제와 인권에 어느정도 양보한 타협점에서 실리를 구하는데 있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와같은 「전환」은 공산주의의 지도적역할의 종말을 초래,마침내 공산주의의 자폭으로 이어질수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가 결코 택할길은 아니라는 점이다.
소련의 지도자가 누가되든,또 그들의 정책이 어떠하든간에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체제의 쇠미를 재촉하고 있다. 따라서 이점에서 서방측의 도움은 다소 건설적인 역할을 담당할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와같은 원조는 IMF와 같은 세계기구의 주도하에 「자유경제지역내 경제흐름」의 형태로 이루어져야한다는 단서가 따른다.
소련이 공산주의체제를 완전히 포기하는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대가를 요구한다.
특히 유럽통합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으며 진정한 개혁까지는 수많은 위기를 맞게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체제가 공중분해될것을 우려한 군부의 반동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온갖 실패에도 불구,당의 독재권력유지에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어왔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결론적으로 소련이 공산주의를 포기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며 공산당이 지금은 글라스노스트와 민주화의 빛깔을 띠고 있지만 최후까지 생존을 위해 버틸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