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 엇갈린 TV상봉(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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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어무이(어머니)요.』
『니 윤이가.』
『맞습니더.』
『내 오매(어머니)다…』
정초 TV로 이루어진 47년만의 모자상면은 노모의 골깊은 얼굴에 하염없는 한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ㆍ친지들과 정담을 나누던 신정연휴인 2일저녁, KBS­1TV가 마련한 원단특집프로 『사할린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는 식민지ㆍ분단 등 불운의 한국 근대사가 남긴 상흔인 5백여 사할린이산가족들의 「재회에의 열망」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4세된 아들을 남겨두고 집앞 물레방앗간에서 징용을 당해 끌려간지 47년,아들 한승전씨를 애타게 찾는 사할린의 한상국노인(78).
서울의 여동생 진복희노인(72)을 찾고서는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할린 진창호노인(75)의 오열.
반쪽 TV화면으로 갈라진 서울과 사할린을 넘나든 그리움의 한은 『꼭 조국에 묻히겠다』는 일념으로 붙박이 가재도구를 장만치 않은 채 살아왔다는 사할린 최영춘노인(69)에게서 진한 조국애로 승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할린 동포들의 망향의 열정은 지난해 8월 한소간의 모국 방문합의로 실현되게 되었고 그달 29일엔 귀국하겠다는 집념으로 45년간 무국적으로 살아온 8순의 한원수노인이 영구귀국,부인ㆍ아들들과 극적 상봉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더불어 작년에는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지며 동ㆍ서독간의 이산가족들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된 변혁의 시기가 왔음에도 분단의 휴전선은 남북이산가족을 올 새해에도 기약없는 「영원한 이산가족」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 현실이다.
『소련과 같은 먼 공산주의 국가와도 이산가족의 벽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데 우리 남북이산가족들은 언제 재회해 설날 떡국이라도 나눠 먹을 수 있겠습니까.』
북한에 부인과 딸을 두고 월남했다는 나노인(78ㆍ서울 대방동)은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쓰라린 한을 하소연했다.
『도저히 더 볼수가 없어 TV를 끄고 말았습니다.』
울먹임으로 계속되는 나할아버지의 서글픈 한에서 90년대 이땅의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는 다름아닌 통일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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