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더위 대책을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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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연일 30도를 웃도는 날씨와 열대야 현상으로 모두 힘든 여름이었다. 더위에 숨진 노인의 기사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기도 했다.

사실 혹서(酷暑)는 해마다 전 세계적으로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무서운 기상재해다. 미국만 해도 혹서로 인해 연 4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데 이는 토네이도나 허리케인으로 인한 사망자를 훨씬 웃돈다.

3년 전 프랑스에선 혹서로 인한 끔찍한 소식이 들려왔다. 2003년 8월 사상 유례없는 혹서가 유럽을 몰아쳤을 때 프랑스에서만 1만5000여 명의 노인이 사망했다. 기상학자들이 일찍부터 2003년 여름이 프랑스 역사상 가장 뜨거운 계절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아무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마 '더위쯤이야'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긴장이 풀어진 그해 여름 휴가철, 혹서는 프랑스 전역을 강타했다. 의료진과 정부 직원들이 휴가를 즐기던 사이 병원은 희생자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중앙 정부로부터의 더위에 대한 경고는 물론, 비상 상황 대처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자녀가 피서지에서 혹서에 대한 안부 전화를 했을 때, 고통받고 있던 노인들은 종합병원으로 몰려갔다. 병원 복도까지 노인 환자로 가득했으며 부족한 의료진은 효율적 진료를 펼칠 수 없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세계 최고의 의료보험을 갖춘 나라로 인정한 프랑스조차 공중건강교육과 홍보활동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바로 사회조직에 있었다. 프랑스는 급격한 노령화를 맞았다. 노인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혼자 생활하며, 혼자 마지막을 맞는 노인이 많아지게 됐다. 가족이나 친척이 고령자를 돌봐 왔던 전통적 가족 중심 문화는 핵가족 세대로 인해 허물어졌다. 이제 노인이 병에 걸려 약해지거나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들을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 일은 이웃의 몫이 돼 가고 있다.

이런 문제는 프랑스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2005년 기준 65세 이상 노년 인구는 430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 4728만 명의 9.3%를 차지한다. 이뿐 아니라 핵가족화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65세 이상 고령층의 인구 대비 일(日) 사망률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높은 사망률은 온 여름을 무더위로 지내야 했던 악몽 같던 1994년 여름에 나타났다. 기온이 32도를 넘으면 노인의 사망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한편 젊은 층과 노년층을 묶어 주는 가족의 역할은 해가 갈수록 점점 약화하고 있다. 노인을 돌보는 전통적 우리의 미덕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혹서의 강도와 빈도의 증가가 노인에게 점차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시기에 기상청에서는 내년부터 열파(熱波)예보를 겨울의 한파(寒波)예보처럼 발표하기로 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보건당국이 열파예보를 이용하고, 혹서 시 대피 방법이나 응급 대처 요령을 대중매체를 통해 홍보한다면 귀중한 생명의 희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는 이러한 면에서 본받을 만하다. 일 년에 1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혹서로 고생하는 인도가 위험을 사전에 경고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오후의 오랜 시간을 그늘에서 지내도록 계몽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인도에서 혹서로 인한 사망자 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속하게 진행되는 지구온난화로 혹서는 더욱 빈번해지고 더위의 강도는 훨씬 심화하리라 예상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삶은 기존의 가치관과는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노인정책뿐 아니라 공공정책.경제정책 등 사회 요소요소에서 온난화에 대한 적응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손병주 서울대 교수·지구환경과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