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에 제동을 건 곳은 열린우리당이었다.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 협의를 한 결과 증세가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이다.
노 대통령이 적극 지지하고 있다는 '비전 2030'이 뭐기에 여당이 반발하는 걸까. 제목만 보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먹고살 수 있는 성장동력 발굴이나 경쟁력 강화 계획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정 협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내용은 그와 다르다고 한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온 분배정책의 새로운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여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함께 가는 한국'이란 부제도 그래서 붙은 듯하다.
무엇보다 당정 협의 참석자들의 귀를 의심케 한 것은 상상을 초월한 재정 규모였다고 한다. 중장기 복지대책엔 억 단위가 아니라 조 단위 숫자가 제시돼 있다. 당장 올해부터 2010년까지 4조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어 2011~2020년 300조원, 2021~2030년 1300조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여당의 한 참석자는 "정부 계획은 2020~2030년 한국을 선진국으로 전제하고 있는데 과연 현실을 고려했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정부의 계획은 이상론에 치우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조차 경제성장률이 2020~2030년이면 2.9%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여건으로는 1300조원짜리 복지정책은 고사하고 중국에 추월당할 것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21일 "먼 미래의 일인데 현 정부에서 책임지고 추진하겠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임기 말 무지갯빛 청사진을 남발하지 말고 어떻게 재원 조달을 할지, 무엇으로 성장 동력을 삼을지 현실적으로 따져보라는 주문이다. 여당이 이상론을 제시하더라도 정부는 차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법인데도 요즘엔 이 역할이 뒤바뀐 듯하다.
김동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