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파지 줍는 팔순 할머니 '아름다운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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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정성란 할머니가 주택가를 돌며 모은 라면박스 등 파지를 리어카에 싣고 고물상으로 가고 있다. [매일신문 제공]

"평생 소원을 이뤄 이제는 여한이 없습니다."

수십 년간 리어카를 끌며 파지를 모아 판 돈으로 지체장애인들에게 900만원을 전달한 정성란(82.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할머니는 더없이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신경통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는 정 할머니는 팔과 다리가 절단된 지체장애인을 돕는 것이 인생의 막바지에 남은 유일한 바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언제.어떻게 될지 몰라 1000만원이 채워지지 않았지만 18일 서둘러 대구지체장애인협회를 찾았다.

할머니는 이날 협회 사무실에서 흰 봉투를 쑥스러운 듯 겨우 내밀었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팔.다리 없는 장애인을 불쌍히 여겨 왔다"며 "그들을 위해 써 달라"고 말했다. 봉투 안에는 수표 900만원이 들어 있었다.

협회 직원과 인사를 나누다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고 말았다. 할머니는 80을 넘겼지만 지금도 파지 모으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매일 오전 7시면 어김없이 파지를 모으기 위해 유모차를 끌고 집을 나선다. 유모차로 마을 가까운 시장을 몇 바퀴 돌면서 한 리어카를 채우면 고물상으로 향한다. 벌써 20년째 이어지는 일과다.

"종이를 많이 찾으면 하루 3500원, 운수 좋으면 4000원까지 수입이 올라갈 때도 있어요."

할머니를 가까이서 지켜본 박영남(46)씨는 "아침 일이 끝나 오전 11시쯤 수행차 선원을 들르면 참선 대신 자주 코를 골며 졸 만큼 고단한 삶의 연속"이라며 "자신은 10평짜리 단칸방에 살고 있지만 남을 돕는 일엔 늘 앞장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열일곱에 결혼했다. 결혼 3년 만에 아들을 낳았지만 아들이 네 살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은 할머니를 불행 속으로 밀어넣었다. 전쟁터에 나갔다가 2년 만에 돌아온 남편은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4년 뒤 세상을 떠났고, 혼자 아들을 키워야 했다. 할머니는 여름엔 아이스크림 장사, 겨울엔 고무줄 장사 등 하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였다. 할머니는 어렵사리 아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점심을 거르거나 수제비로 때우며 일하기 일쑤였다. 숨을 돌릴 때쯤 할머니는 먼저 떠난 남편이 생각나 언젠가부터 장애인을 위해 무언가 꼭 하고 싶어했다.

대구지체장애인협회 김창환 회장은 "할머니는 1000만원을 못 채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씩 되풀이했다"며 "우리 지체장애인 모두는 할머니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후원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지체장애인협회는 28일 달구벌복지관에서 회원들 중 다리 절단 장애인 45명에게 할머니의 기부금 20만원씩을 전달하기로 했다. 협회는 전달식에 앞서 할머니가 어떻게 이 돈을 모으게 됐는지 직접 강연을 듣기로 했다. 할머니가 기부금과 함께 용기와 희망도 이들에게 나눠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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