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서 총성…검문만 여덟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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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루마니아로 들어가기 위해 인접국인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공항에 내린 것은 23일 오후4시30분(현지시간).
공항 대합실에서 처음 접한 것은『타다다다…』 하는 자동소총의 연발음과 뒤이어 들리는 비명소리였다. 루마니아 TV화면을 그대로 받아 보여주는 헝가리 TV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23일 오전의 티미시와라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시리아와 리비아계 테러리스트들이 헬기에서 주민들을 향해 기총 소사를 했고 그 소리가 녹음돼 TV로 방송됐다는 헝가리 사람의 설명이었다 차우네스쿠의 개인 경호요원들로 일했던 이들「블랙 데러리스트」들이 차우셰스쿠가 쫓겨나면서 거의 광난적인 상태로 변해 아무에게나 총을 쏘아댄다는 얘기였다.
티미시와라가 목적지라고 하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국경이 이미 페쇄됐을 뿐만 아니라 설사 들어간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 죽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프랑스기자 1명과 헝가리 운전수·통역 등 3명이 국경을 넘어 티미시와라로 가다가 총을 맞고 숨졌다는 보드내용을 전해준다.
부다페스트에서 국경 검문소인 나들라크까지 태워주고 상황이 허락하면 티미시와라까지 함께 들어갈 운전수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운 좋게 라이로시(구) 라는 택시 운전수를 찾아냈다. 일당에 생명수당까지 달라는 얘기였다. 라이로시는 우선 자기 집으로 가 아내와 두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칠흑같은 밤을 뚫고 나들라크로 향했다.
눈물을 글썽이는 그의 아내를 뒤로 한 채.
역시 우려한대로 나들라크 검문소는 폐쇄됐다. 밤11시30분. 국경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는 서방기자들 30여명과 헝가리 국경 수비 경찰만이 서성거릴 뿐 거기서 2백m 떨어진 루마니아 국경 검문소 쪽은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 일단 날이 밝으면 상황이 좁아질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다음날 아침 8시, 같은 호텔에서 밤을 지새운 50여명의 외국기자들과 함께 호텔을 떠났다. 『상황은 어젯밤보다 다소 호전됐으니 들어가려면 들어가되 목숨은 자기책임』이라는게 헝가리 국경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우선 차량에 백색기를 달고, 적십자 마크와 함께 PRESS라는 마크를 붙일 것, 차량은 일렬종대로 중간에 서로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꼭 붙어갈 것, 가급적 속력을 내서 달리고, 중간에서 누가 손을 흔들더라도 절대 멈춰 서지 말 것, 그리고 만일 중도에 총소리가 들리면 즉시 차에서 내려 길옆에 엎드릴 것…헝가리 국경 경찰의 충고사항이었다.
30여명의 기자를 태운 13대의 차량행렬은 그렇게 출발했다. 라이로시는 성호를 그으며 싱긋 웃음을 보낸다.
루마니아 쪽 검문소, 국경 경찰 몇 명이 나와 여권을 보고 비자신청을 하라고 한다. 미화 30달러와 비자는 쉽게 교환돼 나왔다. 이들도 오른팔에 흰색 완장을 차고 있었다. 상황은 책임질 수 없고, 자신들도 상황을 정확하게 모른다는 설명이었다.
24일 오전9시40분 13대의 차량은 루마니아 땅으로 들어가 아라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황량한 들판을 가로질러 마을이 나오면서 처음 보인 것은 3색 국기 한 가운데의 공산당마크가 도러내진채 펄럭이고 있는 루마니아 국기, 이어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주민들은 지나가는 우리 일행을 향해서도 피로를 잊은채 기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V자 손짓도 보였다. 연신 그들을 향해 V자를 만들며 같이 응대해 주었다.
『리베르테타』(자유)를 외치는 소리들도 들렸다. 살육과 억압을 거부하며 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자유의 소리들은 기자의 감정에 고압 전류처럼 와 닿았다.
아라드 시내에 들어가기까지 여덟번의 검문을 받아야 했다. 모두 흰색완장을 두른 군인들과 민간인 청년들이었다.
『프레스』 라는 말 한마디에 V자로 응답하며 통과시켜 주었다. 『아직도 모르니 조심하라』 는 충고를 잊지 않으며 잠복된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라드시는 이미 깊숙히 자유의 호흡을 시작하고 있었다.
13대의 차량은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나올 때도 똑같이 나왔다. 적십자 마크를 단 트럭들과 병원차들이 아라드를 향해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아라드시(루마니아)=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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