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진홍의소프트파워

1000원의 가치를 가르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아이들에게 1달러의 가치를 가르쳐 주라고 강조한다.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식사를 챙겨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할 정도다. 1달러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고 설사 100만 달러가 손에 쥐어져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1달러의 매매기준율은 962원대를 왔다갔다 한다. 1달러를 살 때는 980원가량 되고 팔 때는 945원가량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1달러와 1000원을 놓고 어느 것을 택할 거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1달러를 집는다. 1달러의 가치를 더 크게 여기는 것이다. 물론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라는 탓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1달러의 가치를 가르쳐 온 것과 1000원의 가치를 가르쳐 오지 못한 것의 차이도 적잖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홍콩의 최고 부자는 리자청(李嘉誠)이다. 그는 골프장에 가서 차에서 내리다가 그만 1달러를 떨어뜨린 적이 있다. 리자청이 몸을 굽혀 주우려 했지만 손에 닿지 않았다. 이것을 지켜본 골프장 직원이 얼른 차 밑으로 몸을 집어넣어 어렵게 땅에 떨어진 1달러를 집어서 공손히 건네주었다. 그러자 리자청은 그에게 선뜻 200달러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내 돈이 아니라면 누군가 1000달러를 내 집 앞에 놔둬도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하지만 내 돈이라면 단 1달러를 떨어뜨려도 반드시 줍는다"고 말했다. 그 소중한 1달러를 다른 누군가가 수고해서 대신 주워준 것에 대해 리자청은 고마움의 표시로 200배의 값을 치른 것이다. 리자청은 그 누구보다도 1달러의 가치와 소중함을 체득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1달러의 가치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을 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일을 통해 어렵게 벌어봐야 1달러의 가치를 체득할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메들린 올브라이트는 대학 진학 직전에 시간당 1달러를 받으며 여성 속옷매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녀는 자기 손에 시급 1달러짜리 일당을 쥐던 날을 평생 잊을 수 없노라고 고백했다. 그녀는 일을 통해 땀 흘려서 1달러의 가치를 배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1000원의 가치를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 우리의 아이들은 1000원의 가치를 스스로 배우며 깨우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1000원의 가치를 가르쳐본 적도 거의 없고 아이들 역시 1000원의 가치를 스스로 깨우치기엔 너무 배가 부르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1000원은 자투리요 부스러기일 뿐이다. 1000원이 그나마 가치를 발휘하는 것은 강남에서 자동차 대리 주차 비용을 지급할 때 정도다. 그나마도 청담동에서는 2000원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작통권' 논란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진다면 젊은 세대에서는 '된장녀'가 그 못지않은 논란거리다. '된장녀'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진 유행어로 자신은 능력이 없지만 돈 많은 남자나 부모에게 기대서 외국 명품에 집착하며 고급 레스토랑을 즐겨 찾는 여성을 지칭한다. 왜 유독 여성에게만 된장녀란 낙인을 찍느냐고 항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어느새 된장녀가 사회적 논란거리로 될 만큼 실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 된장녀에게 절실한 것도 바로 1000원의 가치를 가르쳐주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얼빠진 '고추장남'도 예외일 수 없다. 게다가 '빈센트 앤 코' 인지 '귀'인지 하는 가짜 명품시계 소동을 통해서도 느낀 바이지만 진정한 명품을 지닐 자격이 있는 사람의 첫째 기준은 역설적으로 1000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