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간첩의 시선으로 서울을 얘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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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소설은 잘 읽힌다. 작가가 직접 나서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소설은 잘 읽힌다. 이야기에만 매달리지 말라는, 긴박한 서사 아래 묻어둔 무언가를 읽어달라는 당부란 것도 알지만, 그래도 잘 읽힌다. 재미있다는 얘기다.

김영하답지 않은 소설이란 혹자의 평에 반대한다. 문학터치가 보기엔 영락없는 김영하 소설이다. 이번에도 자살청부업자,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자동차 트렁크에 갇힌 남녀 따위가 등장하는 건 아니다. 대신 간첩이 출몰한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간첩이란 존재는, 엘리베이터에 끼거나 섹스를 하면 투명인간이 되는 남자만큼 수상쩍고 역설적인, 판타지마저 연상되는 캐릭터이지 않을까.

소설의 주인공은 김기영이란 남자다. 42년 생애를 정확히 절반씩 북과 남에서 나눠 산 인물이다. 84년 남파된 그는 주사파 학생들로부터 주체사상을 배우는 등 공작에 열심이었지만, 95년 북쪽 담당자가 실각하고선 평범한 중년가장으로 10년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e-메일 한 통이 날아온다. '24시간 내에 귀환할 것'. 소설은 그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작가는 종종 간첩을 다른 이름으로 호명한다. 비합법적 이민자, 자발적 고아, 이식된 자 등등. 함께 있으나 함께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정체성의 캐릭터들이다. 가만, 어딘가 낯이 익다. 사회의 집단적 가치(작가에 따르면 시스템)와 슬쩍 비켜 있는, 그래서 내심 전복을 욕망하는 김영하 소설의 예전 캐릭터들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처지였다.

소설의 매력은 신랄한 세태 비판에 있다. 경계인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은, 평양과 소돔의 중간께 위치한다. 아내 마리가 몸소, 두 명의 남자와 침대 위에서 증명한 서울이 소돔의 풍경이라면, 입시생 김기영에게 가장 쉬웠던 과목이 국민윤리였다는 장면에서, 서울은 평양의 판박이가 된다. '수령'과 '당'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국가'와 '민족'만 넣으면 정답이었단다.

아무래도 '광장'의 21세기 버전은 아닌 듯싶다. 이명준은 이데올로기를 놓고 갈등했지만, 김기영은 당위와 일상 사이에서 방황했다. 북의 지령이 일종의 당위라면, 서울의 소시민 김기영은 자체로 일상이다. 김기영이 자수를 결심한 건 자본주의가 우월해서가 아니었다. 가족으로 돌아가라는 남측 요원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잔잔했던 일상에 파문이 일어난 뒤여서였다. 간첩보다 무서운 게 일상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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