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고독과 폭력으로 헝클어진 두 개의 '사랑 퍼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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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 작품은 10대 소녀가, 다른 하나는 아홉살 소년이 이야기를 이끈다. 언어의 실험과 퍼즐식 짜맞추기에서 독자의 폭넓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두 소설은 각기 독창적이고 전혀 다른 이야기다. 부부가 발표 전까지 서로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것을 먼저 읽든지 뒤의 것이 앞의 것을 거의 완전히 지워버릴 정도로 둘이 전혀 다르다. 그러면서도 다 읽고 나면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랑의 역사'는 '사랑한다'는 말이 의미를 상실한 시대에, 절절한 사랑을 담은 한 권의 책이 돌고 도는 구조다. 그 밑에 인간의 짙은 고독과 전쟁의 폭력이 깔려 있다. 작가를 꿈꾸는 폴란드계 유대인 레오는 첫사랑 소녀 알마를 찾고 있다. 레오가 알마를 주인공으로 쓴 소설 원고는 나치의 학살이 시작되자 언론인 친구 즈비에게 넘어간다. 칠레로 망명한 즈비는 현지에서 만난 로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레오의 원고를 스페인어로 베껴 전한다. 알마라는 이름만 제외하고 모든 이름이 바뀐 소설은 다시 칠레를 여행하던 미국 청년 다비드의 손에 들어간다. 그는 연인 샬럿에게 이 소설을 선물하고 둘이 낳은 딸을 알마라고 이름 짓는다. 다비드를 암으로 잃은 뒤 일에만 매달리던 샬럿은 책을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10대 소녀가 된 알마는 동생 버드와 함께 자기 이름과 같은 소설의 주인공을 찾아나선다. 한편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고 미국으로 탈출해 열쇠공이 된 레오. 그는 앞서 미국으로 이민온 첫사랑 알마(소녀 알마와는 동명이인)를 찾지만 알마는 레오의 아이를 임신한 채로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다. 책도 연인도 자식도 잃어버린 레오. 그러나 그는 삶이 아름답고 영원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믿는다. 레오의 믿음은 엄마에게 새 연인을 찾아주려는 소녀 알마의 노력과 만나게 된다.

이 극적인 만남의 이면에 작가 니콜의 기지와 작품의 활력이 숨어 있다. 소설을 정치적 비판이 아닌 일상의 드라마로 만든 힘은, 자신이 신이라 믿는 엉뚱한 소년 버드의 풀이에 있다. "레오 거스키이며 즈비 리트미노프이며 메레민스키이며 또한 모리츠인 그 사람"을 찾아 누나와 연결하는 버드의 '오해 속 지혜'가 소설을 푸는 열쇠다. 과연 인생은 무겁지만 지혜는 가볍고, 인간은 우울하지만 신은 즐겁다.

남편 조너선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은 사진, 그림, 인물의 심리를 반영하는 문체 등에서 아내의 작품보다 훨씬 실험적이다. 초반부에는 책장이 다소 느리게 넘어간다. 그러나 죽음과 상실의 공포, 그리고 사랑과 표현의 한계라는 주제는'사랑의 역사'와 동일하며, 막바지에 한 줄기 햇살처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도 비슷하다. 12살 소년 오스카는 9.11 테러로 죽은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열쇠를 발견한다. 열쇠가 담긴 봉투에는 '블랙'이라고 씌어 있다. 오스카는 뉴욕에 사는 블랙이라는 이름을 가진 216명을 차례로 만난다. 이것이 그가 아버지를 애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드레스덴 폭격을 겪은 뒤 죽음으로 인한 상실이 두려워 자식(오스카의 아버지)마저 외면한 할아버지 역시 죽은 아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면서 용서를 빈다. 이들의 긴 애도는 마지막에 이르러 아주 엉뚱한데서 해결된다. 암으로 죽은 아버지의 유품인 열쇠를 찾던 블랙이라는 사람과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오스카가 만나면서 닫혔던 문이 열린다. 그런데 혹시 이 모든 '블랙씨 찾기'는 아빠를 잊은 것처럼 보이던 엄마가 창조한 플롯은 아닐까?

열쇠 모티프, 세대 간의 대화, 복잡한 플롯을 해결하는 방식, 유대인이라는 가족사가 드러나는 방식 등 여러 면에서 두 작품은, 그리고 아내와 남편은 다르면서 닮았다. 라이벌이면서 천생연분은 가능할까? 부부가 똑같이 성공하고 싶은 우리 시대 연인들에게 두 소설은 다름과 닮음의 멋진 예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폭력의 어두움이 일상이 된 문명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권택영 교수(경희대 영어학부) tkwo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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