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만 보는 「광주 보상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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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사망자· 부상자 및 유족들에 대한 보상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묘안을 찾지 못한 채 난감해하고 있다.
여야는 당초 올해 안에 보상금액·방법 등 골격을 정하고 내년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으나 막상 협상이 시작되자 당별로 현격한 견해차이를 보여 연내합의가 어려운 형편이다.
광주보상문제는 또 정당간 이견 외에도 현행 국가유공자보상지급법과의 형평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정치권에서 쉽사리 결론을 내기 어려운 요인을 안고있다.
보상 및 명예회복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쟁점은 한마디로 보상액수. 지급대상자 선정, 부상자처리, 공휴일제정 여부, 묘역성역화 등 여러 가지가 문제가 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부분은 역시 보상금 산정이다.
광주문제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평민당은 16일 공화당 일부의원과 함께 ▲사망·실종자 3억원 ▲부상자는 정도에 따라 1억∼2억원 ▲구속·수감됐던 사람도 구금일수에 따라 하루 5만원씩에다 각각 호프만식 손실소득을 더해 보상금을 지급하자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민정당은 『다른 보훈대상자와 형평이 어긋난다』며 처음부터 난색을 보이고 있다.
민정당이 제시한 국가보훈처자료에 따르면 89년말 현재 애국지사·상이군경·유가족 등 국가로부터 연금을 지급 받는 보훈대상자는 총 11만6천6백88명.
이들 중 가장 수혜 숫자가 많은 ▲60세 이상의 미망인 ▲70세 이상 부모 ▲상이 5, 6급 대상자들이 받는 금액은 연평균 8만∼14만원 정도다.
지난 62년 이 법이 실시된 이후 지금까지 27년여간 받아온 연금총액을 합산해 보면 ▲애국지사가 평균 9천1백만원 ▲상이3급 4천4백여만원이며 상이 6급은 7백26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민정당으로서는 많이 주고서라도 광주문제를 빨리 끝내고는 싶지만 현격한 불균형을 이루는 보훈대상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민정당은 기본적 보상금은 국가유공자 보상법에 준해 국가에서 지급하고 나머지는 위로금 등 명목으로 국민성금으로 얹어주어 해결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망·행불자는 1억2천여만원 내외, 부상자는 최저3백60만원∼최고 1억6천여만원이 되게 해준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광주출신의 전국구의원인 김인곤 광주특위 간사가 평민당과 상의해 단일안을 내놓긴 했지만 당론으로 뒷받침되지 않은「협상용」이라는 인상이 짙다.
어차피 깎일 것이라는 계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입장이다.
3야 공동보조를 맞추긴 해야겠는데 3억원이라는 숫자엔 선뜻마음이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평민당 역시 목청을 높이고는 있지만 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고 믿는 것 같지는 않다. 기를 쓰고 관철시킨다 하더라도 광주쪽은 만족시킬지 모르지만 상이군경회·애국지사유족들로부터 받을 공격과 『너무 심하다』는 호남이외지역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평민·민주당에는 전공유공자·상이군경들이 찾아와『나라 위해 싸운 우리의 몸값은 어떻게 되느냐』며 「연금현실화」를 요구하는 등 반발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위관계자들에 의하면 광주보상의 대상자는 사망자 2백3O0여명, 실종·부상자들을 합해 대략 l천여명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만약 야당안대로 합의가 되면 소요재원이 2천억원쯤돼 금년도보훈연금대상자 11만6천6백여명이 받은 총액 2천4백억원과 맞먹게된다.
이처럼 속사정이 복잡하게 얽힌 탓에 보상문제가 쉽사리 결론이 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평민쪽은 몰아붙이려 하지만 민정이나 민주쪽은 공청회개최 등 가급적 시간을 갖고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하느냐』는 여론을 반영해 절충해보려는 눈치다.
결국 내년2월 국회에서나 처리되겠지만 그 동안 액수공방을 너무 지나치게 벌여온 나머지광주피해자들의 기대치만 잔뜩 높여놓아 문제해결이 더욱 어려워졌다.
광주알레르기 때문에 입을 닫고있는 다수 국민들이 적정보상액을 얼마쯤으로 생각하는지가 관심사다. 최근 사건사고로 인한 피해보상 중 가장 높은 액수는 KAL기 리비아 사고때 유족들에게 준 1억원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호프만식 계산에 따른 법정최고액도1억원에 못 미치고 있다고 법조계에서는 말하고있다.
이래저래 광주보상문제는 정치권 모두가 다루기 껄끄러운「화약고」이자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김용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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