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전 차관·청와대 '배 째 드리죠' 진실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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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6일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을 경질한 건 신문유통원 사업추진 부진에 대한 정무적인 책임 외에 (업무)조정.설득 능력이 부족하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 과정에서 유 전 차관이 부적절한 언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해철 청와대 민정수석은 기자간담회에서 "신문유통원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문화부 업무 추진 과정에서 부처 간 이견이 있다고 보고돼 조사했다"고 말했다. 전 수석은 "조사 결과 신문유통원 예산 교부가 수개월간 지연되어 업무가 마비단계에 이르게 되었으며, 심지어 5월에는 신문유통원장이 개인 사채를 차입하여 운영경비로 사용하는 등 파행 운영이 지속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유 전 차관의 경질 파문 이후 공식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유 전 차관이 "홍보수석실 관계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 '배 째 달라는 말씀이시죠'라고 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전 수석은 "관계자들을 모두 조사했으나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전 수석은 "특히 유 전 차관은 민정수석실의 조사가 정상적임에도 조사 과정과 그 이후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인사청탁을 받아주지 않아 그런 것 아닌가' '날 조사하는 건 청와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등의 문제 제기를 해 정무직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교체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공식 입장을 밝힌 이유를 "유 전 차관의 교체 사안이 인사청탁 및 정치공세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 수석은 또 "유 전 차관이 과거에도 청와대 비서관실에 대해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을 확인했지만 이를 문제삼지 않고 올 2월 차관에 임명했다"며 "청와대 인사 데이터베이스에 관련 기록들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그러나 이백만 홍보수석이 아리랑TV 부사장에 K씨를 추천한 것에 대해선 '정상적인 업무 협의'라고 밝혔다. 전 수석은 "인사청탁은 자기 부처 소관이 아닌 일에 학연.지연.금전 등 사적인 의도가 개입되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 수석은 업무 과정에서 K씨를 알게 된 후 추천한 만큼 인사 협의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발표에 대해 김명곤 문화부 장관은 "현재로선 할 말이 없다. 향후 국회에서 질문이 들어오면 답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부 일각에선 "청와대의 주장은 유 전 차관이 괘씸죄 때문에 경질됐음을 재확인해 주는 것"이란 반박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부의 한 사무관은 "유 전 차관의 경질 원인이 청와대의 인사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데 따른 괘씸죄 때문이라는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며 "청와대 측이 유 전 차관 개인의 조정.설득 능력 부족을 거론한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는 "유 전 차관은 정동채 전 장관의 깊은 신임을 바탕으로 인사.예산과 관련한 외부의 청탁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원은 "유 전 차관은 부내 상관.부하직원들에게서 고른 신망을 받았다"며 "청와대의 16일 발표는 유 전 차관을 적극 기용했던 정동채 전 장관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청와대가 거론한 신문유통원의 파행 운영은 기획예산처가 매칭펀드(지원받는 신문사도 지원액에 상당하는 자금을 투자하는 방식) 이행을 요구하며 예산을 제때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문화부에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 유 전 차관은 이날 연락이 되지 않았다.

박정호.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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