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일본영화 황금기 일군 '4인방' 중 한명 … 나루세 미키오 감독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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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주인공 금자씨가 일하는 빵집 이름은 '나루세'다. 극 중에서는 빵집 주인이 일본 유학파인 것으로 설명하지만, 이름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일본 영화 감독 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1905~69)다. 박찬욱 감독의 이른바 '복수 3부작' 가운데 유일하게 여자가 주인공인 이 영화에 나루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꽤 암시적이다. 나루세 미키오는 특히 여자들의 삶을 그려내는 데 뛰어났던 감독이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오즈 야스지로.미조구치 겐지 같은 감독에 비하면 국내 관객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한결 덜 알려져 있지만 나루세 미키오는 이들과 함께 일본 영화의 황금기를 일궈낸 4인방으로 꼽힌다.

17~25일 서울 하이퍼텍나다에서 열리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은 그의 영화세계를 눈으로 확인할 기회다. '아내여, 장미처럼'(35년작) '밥'(51년작.사진)'긴자 화장품'(51년작)'부부'(53년작)'아내'(53년작)'산의 소리'(54년작)'부운'(55년작)'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60년작)'흩어진 구름'(67년작) 등 대표작 10편이 상영된다.

제작 연도에서 짐작하듯 그의 대표작이 주로 만들어진 것은 일본에 패전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나루세 감독 역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5살에 영화사 견습생으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금자씨처럼 잔혹한 복수극을 체계적으로 준비할 만큼 독하지는 못했다. 나루세 감독은 직접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생활고 같은 서민적인 애환을 배경으로, 언뜻 순종적인 듯하면서도 고집스럽게 삶을 헤쳐 간 여성들을 세련된 연출력으로 그려냈다. 권태기에 접어든 서민부부의 일상을 곧잘 그려 당대 일본에서는 '부부 전문 감독'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 같은 영화세계 전반에 대한 강연도 별도로 마련된다. 21일 오후 9시10분 영화평론가 홍성남씨가 강사로 나선다.

그의 영화가 국내 영화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4년 전의 회고전을 통해서다. 이번 특별전은 그때의 앙코르 상영인 셈으로, 부산에서도 한 차례 더 열린다. 9월 1~17일 부산시네마테크에서는 서울에서 상영된 10편 외에 10편을 추가해 총 20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추가되는 10편은 4년 전 회고전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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