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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구가 살아야 찬호가 살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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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특급' 박찬호(30.텍사스 레인저스)와 국내 최고의 투수 지도자 김성근 전 LG감독이 만났다.

박찬호는 이 자리에서 최근 2년 간의 부진에 대한 소회와 내년 시즌 재기를 위한 준비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또 김성근씨는 기술적인 조언과 함께 바람직한 야구관, 자신의 경험에 입각한 부상 방지법 등을 알려주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90승을 올린 수퍼스타 박찬호와 '데이터야구'로 대표되는 명 지도자 김성근씨의 만남은 야구계의 두 거목이 함께 한 의미있는 자리였다. 대담은 지난 9일 중앙일보의 주선으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두시간 동안 이뤄졌다. 두 사람의 요청으로 사진촬영은 하지 않았다. [편집자]

"가방 이리 주시죠." "괜찮아."

광주에서 벌어지는 프로야구 플레이오프를 관전하기 위해 커다란 출장용 가방을 들고 나온 김성근씨를 만나는 순간, 박찬호는 가방부터 건네받으려고 했고, 김성근씨는 "무거운 것 드는 게 좋지 않다"며 사양했다.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문한 차가 나올 때까지 두 사람은 '언제 만났더라'에 대해 말을 꺼냈다.

박찬호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산에서 경남상고 훈련을 돌봐주시던 감독님을 처음 뵈었습니다"라고 운을 떼자 김성근씨는 "난 3년 전쯤 제주도에서 훈련하던 너를 본 적이 있다. 그때보다 살이 빠진 것 같다"고 되받았다.

-김성근(이하 김):"고생 많았지? 얼굴이 까칠하다."

-박찬호(이하 박):"괜찮습니다. 사실 2년 동안 마음고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동안 먼저 연락드리고 찾아뵈려 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듣고, 많이 배우겠습니다."

-김:"2년 동안의 부진은 허리 부상에서 비롯된 투구폼과 투구 패턴의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해. TV 화면을 통해 본 최근 2년 간의 투구폼은 LA 다저스 시절의 다이내믹한 폼과는 거리가 멀어. 완전히 다른 폼이야. 지금 아픈 데는 어느 정도지?"

-박:"통증은 없고…. 거의 나았다고 봅니다. 11월 초에 미국 담당의사의 최종 진단 결과가 나옵니다. 그 결과를 보고 훈련의 강도를 조절할 계획입니다. 물론 그때까지 공을 던질 수 있는 근육을 만들기 위한 운동은 꾸준히 할 계획입니다."

-김:"부상은 치명적이다. 나도 어깨를 다쳐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한번 다치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던지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야."

-박:"저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허리를 다치고 난 뒤 엉덩이쪽을 다쳤고, 그 다음에 허벅지를 다치고…. 계속 부상이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공을 던질 때 피니시 동작에서 왼발을 힘있게 딛고 일어서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가장 큰 무기인 직구를 자신있게 던지지 못해요. 감독님 말씀대로 직구에 자신이 없다 보니 변화구를 많이 던지게 됐고, 그래서 투구폼과 패턴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독님, 직구 스피드는 선천적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후천적이라고 보십니까."

-김:"둘 다지만 선천적인 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싶다. 강한 어깨를 타고나는 게 우선이니까."

-박:"제가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격인 놀런 라이언과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는데요. 그분은 후천적인 노력, 즉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스피드의 열쇠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비시즌 동안의 운동은 밸런스를 키우는 데 집중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힘'보다는 '균형'을 잡는 쪽에 중점을 둡니다."

-김:"지난번 제주도에서 보니 웨이트할 때 상당히 무거운 걸 들던데, 투수는 상체가 너무 발달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생각해."

-박:"맞습니다. 저도 상체는 가벼운 아령을 들고 프로그램에 따른 체조를 하는 정도고요. 그 대신 하체 운동은 많이 합니다. 미국 코치들이 '그만 뛰라'고 말릴 정도죠. 미국인들은 무릎이 약해 러닝을 많이 하지 않고 자전거 타기 같은 운동으로 하체훈련을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뛰어야 힘이 나고, 힘을 쓸 수 있는 스타일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배웠고요."

-김:"이번 겨울에 직구를 던지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특히 공을 던지면서 근육이 만들어지는 부분도 신경을 써야 해. 미국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일본에서는 겨울 동안 공을 많이 던지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리오 마조니 투수코치의 책을 봐도 많이 던지게 하던데?"

-박:"맞습니다. 매덕스나 글래빈 같은 투수들은 캐치볼을 할 때도 실전처럼 하고, 그러면서 컨트롤 잡고 볼끝 살리고 그렇게 합니다. 그리고 직구 부분은 무조건 동감입니다. 제가 재기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직구 컨트롤이 살아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번 겨울 동안 직구를 많이 던지고, 자신감을 되찾아 다시 직구 위주의 투수로 돌아가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김:"직구의 구위를 되찾으려면 멀리던지기부터 시작해서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해. 내년 시즌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준비를 하려는가."

-박:"우선 10월에는 충분히 쉬면서 몸을 만들고 11월부터는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 공을 던지는 근육을 만들 생각입니다. 12월부터는 실전과 다름없는 불펜피칭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그렇게 준비해 1월 중순 팀 훈련을 시작하고, 2월 스프링캠프 시작 때는 거의 최고조의 수준에 올라가서 시즌에 대비할 생각입니다."

-김:"공을 던지는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멘탈, 그러니까 정신적인 부분도 중요해. 투수는 자신감이 최대 무기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한 정신력 강화가 투구훈련과 병행되어야 하니까."

-박:"그렇죠. 저도 그 부분에 많이 할애합니다. 제 기억에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최고의 피칭은 2000년 시즌 마지막 경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이었는데요. 그때 완봉승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피칭을 기억하면 뚜렷이 다르게 느껴지는 게 없고 그저 목표한 지점에 단순한 마음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졌다는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타자를 상대할 때는 '이 타자에게 맞으면 어떡하나'를 생각하면 안 되고 긍정적으로 아웃시키고 난 뒤의 쾌감을 생각합니다. 소극적인 피칭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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