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꿈 키우려 천문대 세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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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아보니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평생을 철강산업에 종사했던 원로 기업인이 말년에 사재를 털어 천문대 건립에 나섰다. 중견 철강업체인 한일철강의 엄춘보(87) 회장이 주인공이다.

엄 회장은 "만화나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이 망원경으로 해와 달과 별을 살펴 보면서 우주를 생각하고 원대한 꿈을 키워 앞으로 다가올 우주시대의 개척자로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천문대를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1919년 3월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 후 월남해 한국전쟁을 맞아 부산에서 잠시 피난생활을 한 뒤 상경, 전후 재건사업에 뛰어들었다.

국영 대한제철의 특약점 경영을 시작으로 철강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57년 한일철강을 세워 강관 생산을 시작했다. 이 회사를 50여년 동안 직접 운영하면서 상장회사로 키웠다.

팔순을 넘긴 어느날 인생을 돌아보다가 '돈이나 인생이란 것이 덧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사소한 일에 매달리지 않고 광활한 우주를 느끼면서 꿈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곧바로 천문대 건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한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장흥유원지 내 계명산 중턱 형제봉에 자리잡은 천문대는 지하 1층.지상 3층.연면적 450평 규모로 조성된다. 이 곳에는 국내 기술로 만든 60㎝급 리치-크레티엥 방식의 반사 망원경과 다양한 방식의 보조 망원경 7종을 갖춰 올해 말 개장할 예정이다. 산 아래에는 스페이스 센터(지상 2층.연면적 920평), 연수동(지상 4층.연면적 670평) 등을 꾸미고, 관람객을 천문대까지 실어 나를 수 있는 33인승 케이블카도 설치할 계획이다.

2004년 착공 당시 130억원으로 추정했던 공사비가 두 배가 넘는 300억원 가까이로 늘어났다고 했다. '장락원(長樂苑)'이라고 이름 지은 천문대는 사설 천문대로서 국내 최대 규모다.

전익진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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