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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경축사속 노대통령 경제인식은?

중앙일보

입력

8.15 경축사에 나타난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 인식은 어떤 것일까. 안타깝게도 '장밋빛 비전'은 있되 그 비전을 위한 실천 전략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단 하나밖에 제시되지 못했다.

이번 연설이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란 점, 그리고 한국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바로 이날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의 연설은 동북아에서 한국의 위상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이 여러 가지 구조적인 어려운에 갇힌 경제 현실에 비해 너무나 거창한 경제적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천 전략은 너무 부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이제 더 큰 도약을 이뤄가야 할 때"라며 "선진한국"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선진한국이란 "모든 국민이 평화롭고 안정된 토대 위에서 활력 있는 삶을 누리고 모든 청소년에게 내일을 위한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지는 나라"를 말한다.

또 이 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으로 "참여정부가 마무리되는 2008년에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고 10년안에 명실상부한 세계 일류 국가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는 경제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미래'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한미 FTA 하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킨다는 확고한 의지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 자주국방을 실현하고 총체적인 국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체적인 국력을 키우기 위해 제시된 전략 중 하나가 한미 FTA다. 노 대통령은 "개방은 우리의 생존전략"이고 "미국과의 FTA는 또 하나의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에서는 민생문제만 제시, 나머지는 낙관 일색

"일본의 성장모델을 쫓아왔지만 이제는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일본을 넘어설 새로운 성공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그러자면 미국시장에서 특히 서비스산업에서 미국과 경쟁해 성공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은 "한미FTA는 경제선진국을 향한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FTA를 제외하고는 경제선진국을 위한 실천 전략이나 과제가 너무 추상적이다. 노 대통령은 경제력 제고를 위해 "제조업과 첨단기술력을 더욱 발전시키고 교육과 사회투자를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기반을 구축해 나가야 하며 서비스산업 육성과 선진통상국가 전략을 적극 추진해 선진국 문턱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밝혔다.

제조업, 첨단기술력, 서비스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경제 전략이다. 최근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투자 부진과 이로인한 잠재 성장동력의 약화, 또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노사관계,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우리 경제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난관에 대한 해결책은 물론 문제제기도 없이 "국민이 힘을 하나로 모아 끊임없이 혁신하고 창조해 나가면" 또는 "한미 FTA로 미국과 경쟁해 성공을 이루어내면" 수많은 경제적 난제들이 해결될 듯한 생각을 갖게 한다.

노 대통령이 경제와 관련해 문제로 지적한 것은 단 하나 민생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민생문제가 구조적인 어려움으로 남아 있지만"이라고 말했다.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그러나 곧바로 뒤이어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위에서 기술혁신과 인재양성을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며 "세계 정상의 제조업을 뒷받침하고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를 이끌어갈 첨단 과학기술역량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고 낙관했다. 경제 낙관론 일색이다.

◆2003, 2005년 경축사에서는 구체적인 경제정책 약속

이는 과거 광복절 경축사와도 상당히 다른 것이다. 노 대통령은 취임한 해인 2003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자주국방, 한미동맹, 한반도.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등 여러 과제를 제시했으나 그 가운데서 경제를 가장 먼저, 가장 최우선적으로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경제의 성공 없이는 다른 성공도 어렵다"고 강조하면서 주택가격을 비롯한 부동산 안정정책, 선진 노사문화 정책을 위한 대책, 개방을 위한 FTA 적극 추진, 교육 개혁, 산학연 협동 프로그램 확충을 통한 청년실업 대책 등을 마련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2005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양극화가 분열의 원인 중 하나라는 점을 지적하며 사회안전망 확충, 일자리 창출, 인재양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때도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 촉진과 고용 확대를 요청했고 노조에 대해서는 기득권을 포기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노사협력, 국가 균형발전 등의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2004년 광복절 경축사의 경우 이번과 마찬가지로 경제에 대한 할애가 적은 편이었다. 2004년에는 과거사 청산과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설했고 경제에 대해서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며 "자신감을 갖자"고만 제안했다.

노 대통령 취임 후 4번의 광복절 연설에서 홀수연도에서는 비교적 경제 정책에 대한 할애가 많았던 반면 짝수연도에는 경제적 문제에 대한 대안보다는 '밝은 미래'에 대한 전망 제시에 초점이 맞춰진 셈이다. 그러나 경제 낙관론에서는 2004년보다 이번이 훨씬 더하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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