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주상복합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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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동 주상복합아파트 타워팰리스.(자료사진=중앙포토)

이코노미스트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들은 부(富)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화려한 외관과 더불어 집값 또한 일반 서민들이 접근하기에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로또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강남의 주상복합 아파트에 입주하겠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속칭 잘나가던 주상복합 아파트들이 찬밥 신세를 당하고 있다. 에어컨을 여러 대 가동해도 한증막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전기요금도 많이 나온다. 어떤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여름이면 곤욕을 앓고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문제점을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지난해 여름 한 일간지에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당시 김정태 행장은 강북의 타워팰리스라고 불리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주상복합형 아파트에서 경기도 일산 신도시 아파트로 집을 옮긴 상태였다.

김 전 행장은 동부이촌동 주상복합형 아파트에 살면서 여름마다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다. 통유리로 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강렬한 햇빛이 집안 공기를 데우지만 제대로 된 창문이 없어 더운 공기가 그대로 실내에 갇혀 있어서다. 5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4개월여 동안은 집안에 들어설 때마다 사우나에 들어선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방과 거실에 설치된 5대의 에어컨을 모두 가동했고 이 때문에 한 달 관리비는 120만원을 훌쩍 넘었다고 푸념했다. 더군다나 집안에서 고기를 굽거나 생선요리를 하면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 점도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 옮긴 아파트는 6000만원 이상을 들여 베란다를 복원하고 그곳에 화분을 키우고 있다고 김 전 행장은 전했다.

물론 주상복합 아파트의 장점도 많다. 입주민들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편리성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 수영장이나 헬스클럽 등 웬만한 편의시설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보안 시스템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렇지만 부의 상징이라는 주상복합에 살고 있는 입주민들에게도 여름철의 관리비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도곡동 T 주상복합 아파트의 매물을 관리하는 공인중개사 A씨는 "평당 관리비는 적어도 1만3000원 정도는 예상하셔야 할 겁니다"며 "쉽게 얘기해서 100평 기준으로 보면 한 달에 관리비만 130만원 정도 나온다고 보면 됩니다"고 말했다.

이곳 입주민인 김모씨 역시 "여름철 관리비의 대부분(70% 정도)을 전기요금이 차지하고 있다"며 "뜨거워진 실내 공기를 식히기 위해선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는데 방마다 설치된 에어컨을 돌리다 보면 전기요금이 자연히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자연적인 환기 사실상 불가능

도대체 '대한민국 최고'라는 이들 주상복합 아파트에 전기요금이 이처럼 많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무엇보다 아파트 공조시스템이 잘못돼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부분의 주상복합 아파트는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다. 따라서 아파트 전면 통유리를 통해 열기가 그대로 실내에 전달된다. 반면 열기를 식혀줄 통로인 환기구는 작다. 외관을 생각해 밖으로 열리는 환기구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열의 양은 많은데 내보낼 수 있는 통로는 작기 때문에 당연히 실내 온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확인차 방문한 도곡동의 T 주상복합의 경우 70평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열리는 유리창은 불과 3 ̄4개에 그쳤다. 크기 역시 가로 1m, 세로 30㎝ 내외다. 이마저도 약 40도 정도만 열린다. 한마디로 자연풍을 이용한 환기는 불가능한 셈이다.

자연풍 환기가 불가능하다 보니 동원되는 게 바로 에어컨.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대부분의 경우 방마다 에어컨이 따로 설치돼 있다. 개인적으로 따로 설치한 게 아니라 시공 때부터 천장에 설치돼 있던 것이다. 실제로 방문한 도곡동의 한 주상복합(70평형대)의 경우 총 6대의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방(총 3개)마다 에어컨이 1대씩 있었고, 주방에도 1대가 있었다. 또 거실에는 넓이를 감안해 2대의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다. 일반 서민 아파트의 경우 한 대뿐인 에어컨 혹은 선풍기 앞에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2 ̄3㎾급 에어컨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동하면 하루 6000원 정도 전기요금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에어컨 1대를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동시키면 단순 계산으로 한 달에 18만원 정도 전기요금이 나온다. 결국 70평형대 아파트의 경우 총 6대의 에어컨을 돌린다고 하면 전기요금만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나온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다 여타 관리비까지 추가되면 한 달에 140만 ̄150만원 정도의 관리비 고지서를 받는 것은 예사다. 140만 ̄150만원 되는 관리비는 웬만한 일반 봉급쟁이 월급의 절반에 달하는 돈이다. 주상복합에 사는 입주민들의 경제적 여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이 때문에 올 여름 들어 도곡동의 T 아파트를 비롯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매물이 급증했다는 소문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그렇지만 늘어난 매물만큼 실제 거래는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년 전 '월급쟁이 부부의 타워팰리스 입성기'라는 책을 내 화제가 된 유효남씨 부부 역시 여름철 더위로 인한 고민을 털어놨다. 유씨는 "처음에는 관리비가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듣고 걱정을 많이 했지만 실제 살아보니 80만원 내외로 그리 걱정스러운 수준은 아니다"며 "그렇지만 여름철에는 환기가 되지 않아 정말 덥다"고 말했다.

유씨 집의 경우 중간층에 속하는 35층에 위치한 데다 서향이어서 여름철 입사량이 특히 많다. 유씨는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금세 더워져 혼자 있을 땐 집안보다 같은 층에 위치한 테라스에서 독서하는 등 더위를 피한다"며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36 ̄37도까지 온도가 급상승한다"고 토로했다.

창고엔 선풍기 산더미처럼 쌓여

물론 모든 가구의 관리비가 그토록 비싼 것은 아니다. 6대의 에어컨 모두를 가동하는 가정은 많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한 다른 주상복합 70평형 아파트의 경우 6월 한 달 관리비 청구 내역서를 확인해 보니 약 90만원 정도가 청구됐다. 이 중 41만원 정도가 전기요금이었다.

집주인인 박모씨는 "보통 거실에 있는 에어컨 한 대만 켜 놓고 선풍기 바람에 의지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대부분 일반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입주했기 때문에 기존에 선풍기를 사용하던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겨울철에 이 주상복합 아파트의 지하에 위치한 창고에 내려가 보면 각 가구에서 보관하는 선풍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전했다.

주상복합이라고 해서 다 같이 전기요금이 비싼 것만은 아니다. 개별 냉난방을 하지 않고 중앙 냉난방을 하는 경우에는 전기요금이 훨씬 저렴하다. 실제로 양재역에 위치한 SK허브 주상복합의 70평형 상가의 경우 하루 종일 에어컨이 돌아가지만 한 달 관리비는 76만원에 불과했다. 이 중 전기요금은 18만원 정도. 한 달에 100만원씩 나오는 주상복합 아파트와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서초동에 있는 현대 슈퍼빌 역시 주상복합임에도 불구하고 관리비가 적게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아파트 역시 개별 냉난방이 아닌 중앙 냉난방을 선택하고 있다. 한 입주민은 "여름철엔 약간 덥고 겨울철엔 약간 춥기도 하다. 그래서 따로 에어컨이나 열풍기를 두는 경우도 있다. 그래봤자 한 대씩을 두고 사는 것이니 6 ̄7개의 에어컨을 따로 돌려야 하는 개별 냉난방 집에 비해선 전기요금이 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북의 일반 아파트 관리비는 어느 정도일까? 서울 상계동의 25평 아파트의 경우 한 달에 관리비가 15만 ̄20만원 정도 나온다. 이 중 전기요금은 6만 ̄7만원 수준. 100평 아파트일 경우를 단순 계산하면 한 달에 전기요금이 30만원이 안 된다.

한 주상복합 시공회사 관계자는 "주상복합 아파트의 공조상 문제나 비싼 관리비 등이 보도되면 집값이 5억원 이상 떨어질 수 있다"며 "제발 보도를 자제해 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했다. 시공회사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시공회사에서도 이미 공조시스템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석남식.정준민 기자 (st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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