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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칼럼

적과 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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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광복(光復)'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광복 61주년을 맞는 아침, 이 질문이 떠오르는 것은 선악(善惡).정사(正邪).이해(利害)를 가르는 판단기준이 요동치는 요즘의 어수선한 분위기 탓이다. 어수선함은 바른 인식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터지만, 충돌의 파열음이 가라앉을 기미가 없고 갈라진 물줄기가 서로 만날 것 같지도 않기에, 그 균열의 발원지인 '해방'으로 돌아가 차분히 따져보고 싶은 것이다.

해방은 꽃이 터진 듯한 환희였다. 대하소설 '토지'의 마지막 장면처럼 매사에 신중한 장연학이 어찌할 바를 몰라 어깨춤을 추었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장 노인을 빌려 도시 광장에, 읍 장터에 쏟아져 나온 민중의 감격을 그렇게 표현했다. 소설가 김동리는 뒷산에 올라 흑흑 울었다. '임꺽정'의 작가이자 과묵한 성격의 홍명희도 "천둥인 듯 산천이, 지동인 듯 땅덩이가 흔들린다. 이것이 꿈인가?"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는 불과 2년 뒤 월북해서 북한의 부수상이 될 줄 알았겠는가. 시인 임화도 5년 뒤 인민군 장교로 변신해 종로 네거리에 다시 설 줄 몰랐을 터이고, '해방전후'의 작가 이태준도 빨치산을 소재로 한 '첫전투'를 쓰게 될 것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로 '토지'에 거대한 마침표를 찍고자 했던 작가의 희망을 배신하듯 투쟁의 봉화가 피어올랐다.

민중에게 해방은 어느 날 '도적처럼' 왔고(함석헌), '한밤중 신부처럼' 다가왔다 (김윤식). 태평양전쟁의 전세를 용의주도하게 살폈던 선각자들에게는 박제된 꿈에 생명을 불어넣는 축제의 신호였을 것이다. 민중들이 자신도 모르게 내질렀던 탄성과 선각자들의 비장한 축제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제국의 근대(近代)'가 종말을 고하고, '우리의 근대'가 시작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

'우리의 근대'가 시작된 그 '푸른 하늘'에는 '적(敵)'과 '독(毒)'이 묻어날 여지는 없었다. 적어도 해방의 환희를 서로 나눴던 그 순간까지는 말이다. 적은 생존을 위협하고, 독은 생명을 죽인다. 서구의 근대에도 적과 독이 그득했지만 동행의 윤리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런데 우리에겐 갑자기 찾아온 자유의 기획들이 낯설었고, 그것들이 서로 엉켜 '우리의 근대'를 비틀기 시작한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념들은 서로에게 적이 되었고, 그들이 동원한 수단들은 독이 되었다. '우리의 근대'는 제대로 발육했느냐는 질문에 이제 전 인구의 10%로 줄어든 해방 체험 세대는 답하기를 지극히 주저할 것이다. 하물며 담론과 개념공간에서 광복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는 이후 세대들에게 그 질문은 더욱 곤혹스럽다. 적과 독이 난무한 간난의 시대를 뚫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지난주 진보의 미래를 타진하는 어떤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필자의 마음은 착잡했다. 발표자와 토론자 대부분은 세간에 잘 알려진 진보 이론가와 운동가들이었는데, 그들의 발언에는 적과 독의 개념이 선혈처럼 묻어났다. 그것은 한국전쟁이 낳았던 '원수'라는 말처럼 서늘했다. 정사(正邪)와 피아의 구도가 해방 후 61년 동안 더 선명하게 우리 인식 속에 고착되었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솟았다. 그래서 이렇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수는 진보에게 적인가?" "신자유주의는 이 시대의 독인가?"라고.

입장을 바꿔 요즘의 현안에 대입할 수도 있다. "작통권 환수는 보수에게 독인가?" 또는 "그것을 옹호하는 진보는 보수에게 적인가"라고. 찬반의 선동적 제목을 연일 쏟아 내는 신문들이나, 소년들의 꿈의 대상이었던 장군들이 거리 시위에 나선 모습이나 해방의 '푸른 하늘'을 배신하기는 마찬가지다. 해방은 동침과 해독의 철학이었다. 자중의 윤리였다. 진보와 보수에게 던진 자문적 성격의 이 질문은 61년 전 '한밤중 신부처럼 다가온' 광복이 우리들의 인식 속에 어떻게 재구성돼 있는지 반추하는 것으로부터 풀어가야 할 듯하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