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여성의 정계진출|"정책차원서 우리문제 풀겠다"-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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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80년대는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무척 고무적인 해였다. 정통성 시비로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제5공화국이 출범이후 자신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작업중의 하나로 많은 열매들을 여성계에 내밀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6공화국에서도 이어져 정부각료·행정부처 고위직에서의 여성진출, 정당 및 국회에서의 여성활동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일반 여성단체들에도 맥이 이어져 「지방자치」를 여성정치참여의 도약기로 삼으려는 노력들이 줄을 이었다.
80년대 여성들의 정·관계진출에서 가장 먼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은 행정부에서의 여성중용이다.
79년 10·26후 위기관리내각의 성격이 짙었던 제4공화국에서 김옥길씨가 문교부장관으로 입각, 48년 초대 상공부장관이었던 임영신씨 이후 네번째 여성각료가 됨으로써 80년대 여성계의 전망을 밝게 했다.
이것은 제5공화국 출범이후 82년5월 조각에서 입법회의의원출신인 김정례씨가 보사부장관에 임명됨으로써 여성각료의 맥이 이어졌다. 특히 김씨는 85년2월 개각까지 장관직을 계속, 역대 여성각료 가운데 가장 장수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제6공화국이 들어서며 여성정책전담기구로 정무 제2장관실을 신설함으로써 여성부신설을 요구하던 여성계의 숙원이 어느 정도 해결된 셈. 정무 제2장관으로 초대 조경희씨, 2대는 김영정씨가 임명됐다.
일반직 공무원에서도 모처럼 여성들이 부상했다. 87년6월 노동부에서 김송자씨가 3급인 부녀지도관으로 승진, 부이사관급 여성공무원시대를 연 이후 변희남(보사부)·신태희(서울시청)·김기업(정무 제2장관실)씨 등이 3급에 잇따라 진출했다.
여성문제를 정책차원에서 풀어 나가려는 정부의 입장도 80년대에 나타난 특이 사항. 81년 민정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여성정책위가 83년12월 국무총리산하 여성정책심의위원회로 발족, 81개항의 남녀차별 개선지침과 여성발전 중장기 기본계획 등을 심의·의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앞서 여성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강구하는 전문연구기관으로 한국여성개발원이 발족되기도 했다.
행정부 못지 않게 여성들의 정치파워를 과시했던 것은 정계. 민정당 여성의원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의정활동은 과거 여성의원들이 「들러리식」자리 채우기에 지나지 않았던데 비해 적극적으로 여성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으로써 크게 활기를 띠었다.
국제연합의 여성차별 철폐협약 인준, 남녀고용평등법 제정 및 개정, 모자복지법 제정 등 일련의 작업은 여성의원들의 의정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각 정당 내에서의 여성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도 80년대의 성과 가운데 하나.
민정당 양경자 의원이 여성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당 부대변인자리를 맡는가 하면 평민당 박영숙 의원은 부총재로 한때 총재 권한대행직까지 수행, 박순천씨 이후 정당에서 모처럼 여성이 최고위직에 오르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여성정계진출의 초점을 모은 사건은 87년11월 홍숙자씨의 대통령후보 출마.
당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으로 있던 홍씨는 민사당의 공천을 받아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됐다.
그러나 홍씨의 기염은 후보등록 18일만에 자진사퇴로 끝나버려 오히려 여성계를 우롱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같은「홍씨 파문」은 후에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자리를 둘러싼 여성계 암투로까지 이어져 80년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일반 여성단체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그리고 다양하게 이어졌다.
한국 여성유권자연맹은 여성유권자들의 정치의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지방자치제도론』이란 책자를 펴내 지방자치시대 여성참여를 유도하는데 앞장서왔다. 한국여성개발원·한국여성정치문화연구소등에서 시작된 여성정치인 양성은 정당으로까지 이어져 민주당에 여성정치학교가 설립됐다. 평민당에서는 이에 한발 앞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될 경우 비례대표에 여성쿼타제를 도입할 것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80년대 여성정치파워는 제도적 개선에 진력해왔으며 정부의 선심공세(?)에 힘입어 어느 정도 세력구축에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이를 내실화 하느냐에 따라 「여성정치시대」의 진로가 판가름날 것 같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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