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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선생님 아직 차도 없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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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도 광명시에서 출·퇴근하는 서울K고의 김모교사(38)는 1개월전 뜻하지 않은 불청객 (?) 6명을 치르며 교사의 사회적처우에 회의감을 느꼈다.
10년전 자신이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이 우연히 집을 알고 문안인사를 여쭙겠다며 들이닥친 것이다. 반갑기보다는 당혹감과 부담감이 앞섰다.
10년전 단칸셋방에 비하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연립주택 셋방살이를 면치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변변치 못한 세간살이가 마음에 걸렸다.
뿐만아니라 제자들에게 대접을 소홀히 할수 없는 만남이어서 열흘치 용돈을 쓰지 않을수 없었다.
짧은 머리와 여드름투성이의 애들이 이젠 자신과 나란히 이 사회를 떠받치는 어엿한 직장인이 된 제자들을 보고 느낀보람은 잠시였다.
『선생님께선 아직 차가 없습니까』
입사 3년만에 대리가 된 대기업에 다니는 한 제자가 실수령 월급이 58만원 (상여금 제외)을 받고 차를 굴린다는 얘기에 괜한 자격지심이 들었다. 『가족들과 한달에 한번 외식하기도 힘들어요.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옷 한벌 사주고 나면 친구를 만나거나 손님 치르는게 겁나요.』
교사경력 11년의 김교사가 받는 실수령월급은 상여금제외 56만원.입사3년의 제자월급에도못미치는 봉급으로 두아이 양육교육비 10만원, 주택관리비와 공과금 8만원, 재형저축 12만원등을 제하면 나머지 3O여만원에서 자신의 용돈에다 생활비를 쪼개살아 여간 빠듯하지않다.
교사들에게 동창회나 경조사·친지손님대접은「없는 집제사 돌아오듯」 큰 부담거리.
『동창회에 나가면 즐겁기 보다는 허탈감만 파고들어 서글플때가 많아요.』
서울 K중 서모교사(42)는『화제가 어김없이 소비생활수준으로 흐르다 「2차가자」는 통에 주머니사정에 쫒겨 속만상해 아예 친구들을 잊고사는게 속 편하다』 고 했다.
대전C고 정모교사 (47)는 3년전 교편을 잡은지 18년만에 장기융자금 1천만원과 전세금3천만원으로 내집마련의 꿈을 이뤘으나 「뭐 피하니 범 만난다」는 격으로 자녀교육때문에 크게 쪼들리고 있다.
대학생 두 아들과 고2딸에게 매달드는 학비가 4O만원으로 실수령액인 78만원 남짓한 월급의 절반을 넘는다. 여기에 자녀학비와 할부상환금 18만원을 떼고나면 고작 20만원밖에 남지않아 상여금이 없는 11월의 경우는 생활비도 모자라 용돈 궁하기가 이를데 없다.
그래서 잔업수당과 다름없는10여만원의 보충수업비가 여간 요긴하지 않다. 그러나 입사9년의 S전자 과장월급 92만원에도 못미쳐 교직을 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정교사는 『이같이 상대적 격차로 사회적 헌신도만큼 경제적 처우를 받지못하는 교사들은 7O년이후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또 하나의 소외집단』 이라고 함분한다.
교사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한 조사가 이를 잘 입증해준다.
초등교사의 경우 4O개 직종중 24위이며 경제적 지위는 30위로 나타났다.
교사들의 처우에 대한 불만은 크게 세가지. 비현실적인 호봉승급,이로인한 일반직 공무원과의 임금격차,형식적인 수당지급등이다.
교원의 최고 호봉인 30년근속자 (40호봉) 의 경우 60년대 초만해도 일반직의 1급1호(차관보급) ,군의 소장계급과 같은 대우를 받았으나 7O년들어 홀대되더니 요즘은 일반직 2급 7호 (국장급) 와 군의 대령급으로 떨어졌다. 최고호봉까지의 승급기간도 일반직 21년,군18년등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
더욱이 호봉간 평균승급액이 1만4백원으로 일반직 1만8천4백원의 55%에 불과하다.
따라서 두 직종간 최고호봉자의 본봉은 교사 63만7천5백원,일반직 89만원으로 연간2백31만원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교사는 직급승진이 없고 호봉승진만 있어 경력에 따른 봉급차이에 대한 불만은 갈수록 커질수밖에 없다.
수당에 대해서도 정부가 생색내기와 공약으로 일관해 왔다고 교사들은 지적한다.
민정당이 13대 총선공약으로 내세운 교과지도비(월1만5천원) 부활은 잊혀진지 오래다. 올들어 전교조파문당시 문교부가 약속한 교과연구지도수당 (월2만원),주임교사수당(월3만원)교육전문직수당 (월10만원) 등도90년도 예산안에서 빠져있다. 『담임수당만해도 그래요.3년전 1백%를 올렸다고 하지만 고작 6천원입니다.』
강원도춘천시 C고교 송모교사(41)는 『매일 학급경영록을 결재받고 월급때「담임수당」이란 명목을볼땐 자존심이 상한다』고 했다.
교사들의 불만은 이뿐만 아니다. 자신들의 보충수업수당으로 지급될 육성회 찬조금을 「옆구리찔러 절받기」 식으로 거두는데 앞장서야한다.
송교사는『때문에 교사로서의 품위절하는 물론 「몸팔아 보충수업수당 번다」 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씁쓰레했다. 『한국노총이 발표한 도시근로자 최저생계비 (4인기준) 는 67만원선입니다. 대기업의 입사5년 월급에도 못미치는 이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12년은 분필가루를 마셔야 합니다.』
서울S고 손모교감(50)은『지난3월 교직30년만에 장가든 아들에게 2천만원짜리 전세방을 얻어주고 나니 빈털터리가 된 느낌』 이라고했다. <안남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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