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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백악관의 갱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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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분에 넘치는 자리에 앉으면 감투에 깔려 다칠 수 있다. 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런 하딩이 그런 사람이다. 그는 '동네 건달(small town sport)'에 불과했다. 스스로 "나는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이 직책을 맡지 않았어야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건 순전히 지방의 정치꾼 해리 도허티 덕분이다. 아무 알맹이도 없는 그를 상원의원으로, 대통령으로 밀었다. 키가 크고, 강한 인상을 주는 외모와 화려한 말솜씨를 갖췄다는 이유다. 대통령이 된 하딩은 도허티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다른 자리도 친척이나 포커 게임 동료들에게 나눠줬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 3300여 개 기관장을 임명할 수 있다. 카터의 조지아 마피아('땅콩사단'), 부시의 텍사스 군단도 있다. 그중에서도 하딩의 '오하이오 갱단'이 가장 악명 높다. 워싱턴의 아지트에서는 금주법이 시행되는 가운데 정부 창고에서 술을 빼내오고, 공직과 정부 사업은 물론 무죄 방면에다 사면.가석방을 팔았다. 백악관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포커판을 벌였다.

결과는 뻔했다.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의석 대부분을 잃었다. 군 의약품을 팔아넘기고 정부 예산을 가로챈 재향군인회장 포브스, 해군의 석유저장소를 막대한 뇌물을 받고 팔아넘긴 내무장관 폴 등 갱단의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핵심 측근 스미스는 구속이 두려워 자살했다.

남북 전쟁의 영웅인 그랜트는 '훌륭한 절도의 시대(Era of Good Stealings)'를 연 대통령이다. 먼로의 '훌륭한 화합의 시대(Era of Good Feelings)'를 빗댄 조롱이다. 훗날 가필드 대통령의 지적대로 전국적 평판과 공익이 아니라 개인적 친분으로 주요 공직을 임명한 결과다.

이복동생 코빈은 '검은 금요일'을 가져온 금 사재기 사건에, 부통령 콜팩스는 철도건설 관련 정부 예산 횡령 사건에 연루됐다. 재무장관 리처드슨은 체납 세금을 거두게 해 절반을 수수료로 챙겼고, 국방장관 벨크냅은 인디언 영토 내 상인들로부터 해마다 리베이트식 상납금을 받았다. 그랜트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사람"이라고 비호한 재무부 세입 관리관과 그랜트의 개인비서 밥콕은 위스키 업자들과 짜고 세금을 착복했다.

미국에서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개인적 측근을 중용해 인사에서 실패했다는 점이다. 분에 넘치는 감투를 씌우면 본인은 물론 임명권자도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된다.

김진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