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모르는 예결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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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 예결위가 뒤뚱거리고 있다. 선량들의 자질 때문이다.
23일부터 시작된 예산결산위원회의 정책질의는 예산심의인지, 정치연설장인지, 지방의회 회의장인지 도무지 분간을 못하게 하고 있다.
「민생국회」 라는 정치권의 허울좋은 슬로건은 자취도 없고 납세자가 안중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24일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전날에 이어 질의의 태반을 자기지역에 『공항을 건설하라』 『국도를 포장하라』 고 했다가 답변이 시원치 않자 『야당출신의원 냈다고 우리지역을 고생시키느냐』 고 책상을 쳤다.
그는 위원장이나 동료의원의 제지나 주변의 눈살도 아랑곳 않고 장관이 답변할 때마다 장광설로 「성의표시」를 공갈 반 구걸 반으로 요구했다.
충청도의 한 의원은 『공주∼논산간에 고속도로를 놓으라』 고 요구하고 강원도 의원은 『부산에서 설악산에 이르는 동해고속도로를 만들라』 고 주장했다. 이러다간 예산이 수 백조가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그뿐 아니다. 22일의 질의에서 한 야당의원은 『나라를 위해 죽은 군인도 국립묘지에 1평밖에 얻지 못했는데 박정희씨는 20평이 웬 말이냐』 는 등 좌충우돌, 예산질의인지 넋두리인지를 모르게 했다. 동료의원의 항의 겸 핀잔에 『정치성 발언이니 이해하라』 고 당당하게(?) 주장했다.
막말로 모든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기지역구 사업얘기나 하고 복덕방에서나 나돌 저급한 정치발언이나 한다면 내년도 팽창예산삭감투쟁은 빈말이란 말인가. 더구나 야당모두 예산삭감은 당론으로 정한 처지이고 보면 당론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대개 이런 비상식적 의원일수록 예산내역도 잘 읽을 줄 몰라 뒤로는 정부측의 설명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수가 많다. 의원들이 이런 한심한 행동을 하고 있는 내막을 안다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더욱 깊어만 갈 것이다. 안성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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