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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 간담회 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태우 대통령은 24일 저녁 숙소인 로잔의 보 리바주 호텔에서 수행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서독과 헝가리를 방문한 소감과 국내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두 나라를 방문하고 난 다음 느낀 소감은. 『오늘만 해도 부시 미 대통령이 냉전종식을 제안했고 소련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북방정책을 걸치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북방 정책없이 이런 상황을 맞았으면 당황했을 것입니다』
-서독방문에서 감회가 깊었을 텐데요.
『출국 하루 전 야당총재들과 만났을 때도 얘기했지만 우리와 독일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서독은 지난 20년간 오늘의 상황을 수용할 역량을 쌓아 왔지만 우리는 그게 없었습니다. 우리는 구태여 얘기하자면 7·7선언 이후에나 준비해 왔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 당장 휴전선이 무너지면 예상 밖의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은 해방직후의 상황을 견주어보면 예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지금부터 미리미리 무엇을 대비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서독과 헝가리를 보고 남북정책에 새로운 구상이 있다면 밝혀주십시오.
『이번 순방을 통해 북방정책을 보완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것으로 느꼈습니다. 절대로 분단극복은 폭력이나 전쟁의 방법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지요. 지금까지 내놓은 방안들을 다시 정리 보완하되 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협력방안이 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남과 북이 대화와 협상을 해야겠지만 주위에서 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소련과 중국·동구권에 우리의 북방정책을 통해 공감대를 넓히고 북한측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체제가 넘어진다는 불안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남북관계개선의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과연 자기들을 도와주려는 것이 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고 북한의 자존심이 꺾이지 않는 방법으로 신뢰를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대통령의 스위스 방문기간 중 남북정상 회담 등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데….
『아직 북한은 그 같은 준비가 돼있지 않다고 봅니다. 언젠가 어떤 형대로든 있겠지만 (정상회담을 지칭) 아직 그렇지 못한 형편입니다』
-휴전선 내 평화시 건설을 좀 더 구체화할 수는 없을까요.
『일산 신도시 건설이 되면 그게 바로 평화시로 연결될 겁니다. 전쟁가능성이 있다면 일산지역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겠지요. 그러나 7·7선언 등으로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일산 신도시를 건설하고 그것이 바로 평화시 건설의 준비단계입니다』
-북한이 개방화의 물결에 언제까지 버틸 것 같습니까.
『서독의 콜 총리와 바이츠제커 대통령도 북한이 납득이 안 간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의 TV도 안 보느냐」고 했어요. 그래서 실상을 얘기해주니 놀라더군요. 북한도 동구권에 유학생과 외교관이 나가있고 그들이 북한에 들어가게 되면 내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되 급히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순방기간 중 국내정치가 시끄럽습니다. 잘 풀려 가리라고 보는지요.
『국내가 시끄럽고 복잡해서 걱정이고, 또 어떨 때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올림픽을 성공시킨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지만 국내정치문제는 뭔가 꺼림칙한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미·일·독 등 다른 나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소야대 니 시끌벅적한것을 잘 참고 끌고 나가는 것을 존경스럽다며 평가해 주고 있어 내가 오히려 착잡합니다. 한칼로「결단이다」뭐다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위로도 되고 걱정도 됩니다』
-지금 말씀으로 미루어보면 귀국 후에 결단적 조치는 없다는 얘기입니까.
『90년대 초까지는 흑백논리의 정치스타일을 벗고 새로운 협력의 정치스타일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80년대의 자질구레한 싸움은 90년대가 가기 전에 그쳐야 합니다. 귀국 후에 더욱 전력을 기울일테니 여러분들도 협력해 주십시오』
【로잔=문창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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