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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청 '따로 정책' 재계 "너무 헷갈려서 원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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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린우리당과 경제5단체장 오찬 간담회가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 강신호 전경련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용구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하동만 전경련 전무, 이계안 당 비서실장, 김근태 당의장(왼쪽부터)이 참석한 가운데 9일 서울여의도 63빌딩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강정현 기자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하느냐?" 대기업 정책을 놓고 여당과 정부 간에 엇갈린 의견이 속속 나오자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위 관계자가 한숨을 내쉬며 던진 말이다. 이 관계자는 "기업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면서 "제발 나라의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한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과 재계의 연쇄 정책간담회가 9일 열린우리당의 전경련 방문으로 마무리됐지만 재계는 더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대기업 규제'와 '투자와 일자리' 간의 '뉴딜'을 제안했지만 대기업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오히려 번지고 있는 모습이다.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의 존폐 여부를 둘러싸고 당.정, 당.청, 당.당 간의 불협화음도 커지고 있다. 재계는 쏟아지는 논란을 지켜보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 '뉴딜' 공염불에 그칠 것인가=열린우리당과 재계는 9일 합의문을 통해 '뉴딜'의 기본 방침을 밝혔다. 경영계는 투자확대와 불합리한 하청관행을 개선하고 고용안정 등에 책임을 다하는 대신 열린우리당은 출총제 폐지를 추진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경영권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의문은 세부 실행계획이나 구체적인 일정에 대한 언급 없이 일반적인 원칙만을 나열하는 등 선언적 의미에 그쳤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더욱이 김 의장의 행보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 심지어 당 내부에서조차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런 합의가 어디까지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 때문에 재계는 시큰둥한 분위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정.청 간에 이견이 조율되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된 합의문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허동준 부대변인은 "지도부에서 당.정.청 협의체를 구성해 이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총제 놓고 오락가락=당.정 간에 딴말이 오가는 대표적인 대기업 정책이 출총제다. 김 의장이 '뉴딜'을 제안하며 출총제 폐지 의지를 비췄지만, 권오규 부총리는 "재계.시민단체 등과 구성한 태스크포스를 통해 연말까지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도 기업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출총제 폐지를 위해서는 순환출자 금지 같은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나섰다. 재계는 순환출자 금지가 재벌 해체를 위한 노림수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상무는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기존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하라고 한다면 30대 기업집단 대다수의 경영권이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기업규제에 대한 시각이 당 내부와 정부 내부에서도 통일돼 있지 않아 혼란을 더욱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는 열린우리당 의원을 겸하고 있는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 출총제는 포기돼야 한다"고 나서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 혼란스러운 재계=재계는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당정의 엇갈린 태도와 불확실한 정책방향이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전경련은 9일 간담회에서 투자 활성화를 위해 출총제 폐지와 함께 수도권 규제 완화, 이중대표소송제 도입 유보, 상법 개정을 통한 적대적 M&A 방어수단 도입 등을 건의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이날 간담회에서 "기업이 앞장서 (출총제 완화의 필요성 등에 관해) 국민을 설득해 달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 대한상의에서 "경제계 제안을 '통 크게' 받아들여 출총제를 폐지하겠다"는 자세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이런 미묘한 태도변화에 대해 재계는 청와대 및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입장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해석하고 있다

이현상.채병건 기자<leehs@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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