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0년 먹여 살릴 금맥 캤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와이브로(휴대인터넷)의 미국 진출은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것을 한 단계 공고히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980년대의 전전자교환기(TDX)와 90년대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독자 개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독자 기술로 개발한 통신 방식이 세계 표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TDX는 외국에서 개발한 시스템을 국산화한 것이고, CDMA는 외국 회사가 원천기술을 가진 것을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와이브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원천기술까지 갖고 있는 통신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삼성전자 김운섭 부사장은 "와이브로 기술의 미국 본토 진출은 이제 휴대전화 단말기를 세계적으로 많이 팔고 적게 팔았다는 정도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우리나라 통신 역사상 최대 쾌거"라고 평가했다.

유영환 정보통신부 차관은 "그동안 정부와 통신업계가 추진했던 IT 839 정책의 결정판"이라며 "이 원천기술이 향후 1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릴 주요 금맥 중 하나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통신 한국의 초석은 TDX가 닦았다. 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개발에 따라 유선통신 수요가 급격히 늘었으나 교환원이 일일이 전화를 연결해 주는 기존 아날로그 교환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전화 한 대를 놓으려면 다른 가입자가 해지할 때까지 몇 년씩 기다리거나 많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76년부터 TDX 개발 계획을 세웠다. 77년 만들어진 한국통신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연인원 1060여 명의 연구진이 투입돼 84년 세계에서 10번째로 전전자교환기인 TDX-1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90년대 반도체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던 자금줄이 TDX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전자교환기는 한국 IT산업 발전의 디딤돌이 됐다.

이동통신은 CDMA가 기반이 됐다. 기존 아날로그 방식 휴대전화로는 한계에 이르면서 93년 미국 퀄컴은 CDMA 방식을 선보였다. 여러 가입자의 통화 내용을 시간별로 나눠 전송하는 TDMA 방식의 유럽식과 비교해 가입자별로 다른 부호를 사용해 통신하는 것으로 같은 주파수로 동시 통화할 수 있는 가입자 수가 많은 데다 보안에도 유리한 방식이었다. 그해 11월 이를 표준으로 채택한 한국은 96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중국.인도.브라질 등이 잇따라 채택하면서 기대를 모았으나 퀄컴의 많은 로열티 요구로 가격 경쟁력이 뒤진 데다 유럽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TDMA를 발전시킨 GSM(유럽통신방식)을 고수하면서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 과정에서 와이브로를 개발하는 기술적인 토대를 이룩했다.

결국 차세대 서비스로 와이브로가 채택된 것은 30년 전부터 독자적인 유.무선 기술을 개발해 온 결과다. CDMA와 달리 와이브로는 원천기술까지 갖고 있어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 송유종 정통부 기획관은 "유선전화 교환기(TDX), 무선전화 기술(CDMA)에 이어 차세대 통신 기술인 와이브로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것은 혁명적인 변화"라며 "CDMA 부문에서 퀄컴이 가졌던 위치를 앞으로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업체들이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