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다세포 소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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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 '엽기 발랄 황당 청춘물'이 '정사'와 '스캔들'의 '우아한 세공술사' 이재용 감독 작품이라고?

혹시 이 감독은 영화를 마치고 "신이여, 진정 내가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 감격스러워 하지 않았을까.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상에도 정색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다세포 월드'에 입장할 자격이 있다.

영화 '다세포 소녀'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가득 찬 '단세포 세상'을 마구 뒤집는다. 원조교제와 프리섹스가 난무하고 트랜스젠더, 외눈박이, 이성복장 도착증에 이르는 '망측한 행태'가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진다.

익숙한 순정만화체 그림에 원조교제나 SM(사도마조히즘) 등 과감한 성적 상상력으로 화제가 된 동명 인터넷 만화가 원작이다. 감독은 원작의 파격을 대중영화의 수위 안에 무난하게 끌어들였다. 영화 후반부 원작의 '막가파'적 정서가 '톤 다운'된 것에 불만을 표하는 열혈 만화팬들도 있으나, 위반과 전복의 쾌감이 질주하는 원작의 매력은 충분히 살아났다.

영상미학도 빛난다. 화면은 '뽀샵'처리라도 한 것처럼 꿈꾸듯 아름답다. 색채는 알록달록 향연을 편다. 장면 연결용으로 삽입된 뮤지컬 장면 또한 한국 영화에서 본 적 없는 성취를 이뤘다. 내러티브의 형식적 파괴 속에 캐릭터의 반복, 뮤지컬 삽입을 통해 통일성을 살린 것도 강점. 에피소드 중심의 만화가 원작일 때의 취약점을 극복한 것이다.

무대는 성적 취향과 종교의 무한 자유를 추구하는 '쾌락의 명문' 무쓸모 고등학교. 가난을 인형처럼 등에 업고 다니는 소녀(김옥빈)는 원조교제로 가계를 돕고 스승(이재용)은 그녀의 효심을 칭송한다. 가난 소녀는 럭셔리 꽃미남 안소니(박진우)를 짝사랑하고, 안소니는 여장 남자인 두눈박이(이은성)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두눈박이의 오빠 외눈박이(이켠)는 비호감 외모 때문에 전교생 중 유일한 숫총각이다.

중성적 매력의 김옥빈을 필두로 젊은 연기자들의 신선한 매력과 1970년대 하이틴 스타 임예진(가난소녀 엄마 역), 이재용(1인 다역 스승 역) 등 중견 연기자들의 호흡이 잘 어우러졌다. 현대무용가 안은미는 뮤지컬 안무 외에 특별출연('에로틱 랠름교'의 선무당 역)도 했다. 장영규의 음악도 귀에 오래 남는다.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는 "10대 관객을 위한 여름 방학 영화로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래디컬한 유머의 성인 영화"라며 "충무로 시스템 속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이 감독이 40대 초반의 두려운 권태를 극복하고 이런 패기를 보여준 점에 박수를 보낸다"고 호평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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