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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형 규정 ‘샤리아’ 앞세워, 가혹한 여성 탄압 불 보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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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09면

SPECIAL REPORT

탈레반 병사가 지난 18일 어깨에 총을 둘러메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다. 미용실 외벽에 걸린 여성 모델들 사진이 스프레이 등으로 심하게 훼손돼 있다. 탈레반의 카불 입성 후 아프간에서는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탈레반 병사가 지난 18일 어깨에 총을 둘러메고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미용실 앞을 지나고 있다. 미용실 외벽에 걸린 여성 모델들 사진이 스프레이 등으로 심하게 훼손돼 있다. 탈레반의 카불 입성 후 아프간에서는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여성의 역할은 이슬람 율법학자가 결정한다.” 탈레반 고위급 인사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지난 18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운영 방식이 아직 결정되진 않았지만 민주주의는 아닐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탈레반 ‘공포 통치’ 앞날 #아쿤드자다·야쿱 등 지도부 강성 #“여성 역할, 율법학자가 결정” 현실로 #부르카 안 입어 총살, 여학교 폭격 #“여성 인권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

탈레반의 여성 인권 탄압이 거세질 것이란 그의 암시는 이미 아프간 곳곳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거나 여성이란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폭정을 우려해 난민 행렬에 가담하려는 여성도 부쩍 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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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아프간을 재장악한 탈레반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도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히잡을 쓴다면 여성도 교육을 받고 직장에 갈 수 있을 것”이라며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당장 아프간 내부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는 모습이다.

탈레반의 여성과 아동 인권 탄압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6월 아프간 북부 루스타크 지역을 점령한 탈레반은 ‘15세 이상 소녀와 40세 이하 과부는 모두 탈레반 전사들과 결혼해야 한다’는 강제 혼인 규정을 발표했다. 여성 권리에 대한 탈레반의 인식이 20년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5월엔 카불 시내 여학교 3곳에 대한 탈레반의 폭탄 공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잇단 여학교 공격은 여성의 교육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탈레반의 경고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탈레반이 처음부터 인권 탄압을 자행한 건 아니었다. 1994년 아프간 남부에서 처음 조직됐을 때는 오히려 ‘학생 보호’를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지역 군벌이 10대 소녀 두 명을 납치하자 주민들은 지역 내 종교학교의 물라(스승)였던 무하마드 오마르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오마르는 이후에도 청소년 대상 범죄가 이어지자 동료 50명과 함께 민병대를 결성했다. 탈레반의 시초였다. 실제로 1996년 탈레반이 카불에 처음 입성했을 땐 사회 안정을 바라던 시민들의 큰 환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앞세우며 여성들을 혹독하게 규제하기 시작했다. 샤리아는 이슬람교 예언자 무하마드의 말과 행동을 담은 하디스와 코란, 이슬람 공동체 내부 원칙을 담은 이즈마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종교법이자 규범이다. 사형을 비롯해 참수형·태형 등 전근대적 형벌 규정이 대거 포함돼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가족 외의 남성에게 외모를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강제 착용하도록 했다.

실제로 탈레반 집권 1기(1996~2001년) 때 여성 인권은 크게 위축됐다. 관공서 등 주요 일자리에서 여성을 모두 내쫓은 건 물론 12세 이상 여성의 교육 기회도 전면 박탈했다. 불륜을 저지른 여성에겐 돌을 이용해 가혹하게 처벌하도록 허용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탈레반 치하였던 1999년 여자 중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초등학생도 6000명에 불과했다. 반면 탈레반이 물러난 2017년 아프간 여중생은 350만 명으로 전체의 39%를 차지할 정도로 늘었다.

아쿤드자다

아쿤드자다

문제는 20년 만에 카불에 재입성한 탈레반 지도부가 과거 지도부 못지않게 강성이란 점이다. 현재 탈레반 최고 지도자는 히바툴라 아쿤드자다(60세로 추정)가 맡고 있다. 이슬람 법학자 출신으로 철저한 원리주의자로 알려진 그는 2016년 아크타르 만수르 전 최고 지도자가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뒤 6년째 막후에서 탈레반을 이끌고 있다.

바라다르

바라다르

2인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53)는 오마르와 함께 탈레반을 조직한 ‘창설 멤버’다. 평화 협상에 직접 나서는 등 대외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이 은둔형인 아쿤드자다와 대비된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유연해 보이지만 탈레반의 입지를 다진 인물인 만큼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탈레반 창시자 오마르의 아들 무하마드 야쿱도 핵심 강경파로 꼽힌다. 30대 초반인 그는 아버지에 이어 군사 작전을 총괄하며 벌써부터 차기 지도자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미국도 아프간 전쟁 초기 여성과 아동 인권 문제를 부각하며 국제사회의 동참을 끌어내고자 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20년간 아프간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7억8000만 달러를 지원하고 의미 있는 성과도 거뒀지만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에 참여했던 하비바 사라비 전 아프간 여성부 장관은 미 외교협회(CFR) 기고에서 “미군 철수 이후에도 아프간 여성들이 자유와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적극 지원하고 감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탈레반의 가혹한 탄압을 두려워한 주민들의 탈출이 이어지면서 난민 문제도 급부상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난민이 이란·파키스탄에 유입됐고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로도 정부군과 경찰 등 상당수가 탈출한 상태다. 이들이 육로를 통해 유럽까지 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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