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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주의 세계관’ 미 네오콘이 둔 민주국가 건설 무리수, 결국 아프간 민심 잃은 게 패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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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06면

SPECIAL REPORT

아프간 주민들이 19일 카불에서 국기를 들고 반탈레반 시위를 벌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아프간 주민들이 19일 카불에서 국기를 들고 반탈레반 시위를 벌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선언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예외였다. 오히려 미국은 가고 탈레반이 돌아왔다. 탈레반은 빠른 속도로 아프간 전역을 장악했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해외로 피신했다. 정권 이양을 위한 과도정부가 들어설 모양이다. 아프간 전쟁은 20년 만에 이렇게 막을 내렸다. 테러를 진압하고 자유를 심겠다는 개전 당시 작전명인 ‘항구적 자유’는 빛바랜 구호로 남았다.

빛바랜 ‘항구적 자유’ 작전 #미, 테러 근절 단기 목표 이뤘지만 #부족·종파·군벌 역학 관계 쉽게 봐 #친미 정부의 무능·부패도 못 끊어 #탈레반, 유화 손짓 기만전술 가능성 #‘난민·테러·마약의 요람’ 우려 높아 #‘제2의 시리아’ 될까 전 세계 촉각

전쟁의 종식은 보통 평화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아프간에선 공포감이 번지고 있다. 나아가 내전의 그림자까지 짙게 드리우고 있다. 수도로 몰려든 피난민들은 카불이 함락되자 망연자실한 상태다. 인산인해의 카불 공항은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 시간들을 연상시켰다. 왜 다시 과거로 회귀한 것일까. 초강대국 미국과 나토군이 20년 동안 8만 병력의 탈레반 하나 없애지 못한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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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땅 아프간은 19세기 세계 제패를 꿈꾸는 세력들이 충돌한 공간이었다. 남진을 추구하는 제정 러시아와 이를 막아내려는 영국이 맞부딪힌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였다. 소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접점이자 힘과 힘이 맞붙는 지정학적 싸움터였다.

냉전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은 1955년 바그다드 조약을 통해 중동과 서남아시아에서 옛 소련 견제망을 구축했다. 1979년이 변곡점이었다. 이란 이슬람 혁명,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집권, 사우디 메카 폭동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리고 같은 해 아프간에 옛 소련군이 진입했다. 냉전 봉쇄망의 붕괴 위기를 직감한 미국은 사우디·파키스탄과 손잡고 아프간에 이슬람 전사들을 대거 투입, 10년에 걸친 게릴라전을 통해 붉은 군대를 막아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냉전은 끝났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도전할 만한 나라는 없었다. 하지만 2001년 9·11은 모든 것을 바꿨고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알카에다의 거점인 아프간은 미국의 첫 타깃이 됐다. 개전 한 달 만에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아프간을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로 바꾸는 이른바 ‘국가 건설’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당시 백악관 네오콘들의 세계관은 명확했다. 냉전 승리로 역사를 완성했다는 정복주의 세계관이었다. 이제 미국의 목표는 완성된 역사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어야 했다. 민주주의가 확산돼야 비로소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민주평화론’의 공세적 세계관이었다.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공세적 세계관을 정책으로 시현하는 계기였다. 불량국가들을 민주주의로 바꿈으로써 세계 평화를 견인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아프간은 그 서막이었다.

하지만 테러 근절이란 단기 목표는 달성했으나 민주주의 국가 수립의 여정은 지지부진했다. 전쟁은 새 국면을 맞았고 탈레반은 다시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소모전 속에 미군 피해와 전비는 늘어만 갔다. 네오콘들의 구상은 의심받기 시작했다. 무력으로 특정 세력을 압도할 수는 있어도 그 자리에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19세기엔 영·러 ‘그레이트 게임’ 무대

결국 미국은 실패했다. 이유를 복기해 보면 첫째, 현지 정치문화의 맥락을 간과했다. 다민족 국가인 아프간의 다양한 부족과 종파·군벌들의 역학 관계를 의식하지 않았다. 특히 전체 인구의 42%인 남부 파슈툰족과 중·북부에 산재한 타지크·하자라·우즈베크족의 민족 갈등을 하나로 묶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세에 대한 반감의 역사와 저항 의지에도 천착하지 못했다.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압도적 화력과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도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둘째, 무리한 목표 설정이었다. 개전 당시의 목표, 즉 테러리스트 거점 파괴에 집중하고 일단락을 맺었어야 했지만 세속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추구하면서 사달이 났다. 특히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면서 아프간 관여는 지지부진해졌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것이다. 이라크 전쟁 대신 아프간 국가 건설에 집중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결국 양쪽 모두 성공적이지 못했다.

셋째, 아프간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끊지 못했다. 미국은 친미 정부에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투명성이 결여된 아프간 정부는 지원이 늘어날수록 부패로 치달았다. 훈련과 장비를 제공하며 공들여 추진했던 정부군 역량 강화 결과는 처참했다. 탈레반의 진격에 무기력하게 패퇴하는 정부군을 보며 막대한 세금 부담을 감수해온 미국인들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넷째, 아프간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미진했다. 탈레반으로부터 해방시켰지만 막대한 원조에도 민생이 나아지지 않자 점차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외세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는 아프간 국민이다. 획기적인 정치·경제 발전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무능한 아프간 정부와 한 몫으로 인식됐다. 부족 단위 정치 공동체와의 대화에도 더 적극적이어야 했다. 여기에 나토군의 탈레반 거점 폭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누적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마지막으로 출구 전략의 적기를 놓쳤다. 아프간을 제2, 제3의 9·11 거점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해외 불순세력의 미 본토 테러에 대한 대응 역량도 높아졌다. 부시 행정부 퇴진과 함께 네오콘의 이념적 공세도 끝이 났다. 그렇다면 전략 목표를 조정하고 철군을 시행하는 게 순리였다. 이전 대통령들도 알고 있었고 구체적인 계획도 논의했다. 그러나 오바마·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히려 병력을 증파했다. 패배로 인식될 만한 정치적 책임론과 부처·이해집단의 첨예한 이견 때문이다. 개전과 참전보다 철군이 더 어렵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탈레반이 돌아온 아프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압도하는 가운데 실낱같은 낙관론도 없지 않다. 권력에 복귀한 탈레반이 과거와 달리 국제사회와 공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며 무도한 행태를 자제한다면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재집권을 준비하는 탈레반이 20년 전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다.

공포 통치로 다시 수렁에 빠질 우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실제로 국가를 운영하려면 막대한 재정이 필수다. 지금처럼 고강도 제재가 이어질 경우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는 탈레반 정부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마약 수출을 은밀히 지속한다면 주변국과 완전히 척을 지게 된다. 경제난으로 민심이 악화되면 군벌들이 들고일어나 내전으로 빨려들 수 있다. 외형적으로나마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친화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짚어보는 이유다. 카불 입성을 앞두고 탈레반이 아프간 국민에게 던진 유화 메시지는 국제사회에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비관적인 전망이 좀 더 우세한 편이다. 유화 제스처는 기만전술일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아직은 많다. 탈레반의 교조적 이슬람 통치 이념은 권력 분점이나 공존을 용인하기 어렵다. 일단 집권 체제가 공고화되기 전까지는 기존 정파들과 대화하는 모양새를 띨 수 있지만 종국에는 본색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이다.

탈레반이 무도한 폭정을 재현할 경우 공포 통치에 따른 단기적 안정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속 가능성은 회의적이다. 이미 아프간은 20년간 세속주의 정치를 경험한 국민, 특히 젊은 세대가 중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들이 언제까지 탈레반 무단 통치를 숨죽이며 수용하게 될까. 기존 군벌들도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반탈레반 전선 규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파슈툰족을 제외한 민족들의 집단 저항 움직임이 관건이다. 탈레반 카불 입성과 함께 이들이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탈레반이 공포 정치를 전개하면 내전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아프간 내전 국면은 단순히 특정 국가 내부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필연적으로 난민을 발생시키고 테러·마약 등이 인접 지역으로 확산된다. 국가 간 무력 충돌로 대표되는 전통적 안보 이슈를 넘어서는 ‘인간 안보’ 위기 요인들이다. 아프간은 이제 ‘제국의 무덤’이 아니라 ‘난민·테러·마약의 요람’이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아프간은 이제 국제사회 공동의 문제가 됐다. 이대로 놔두면 서남아·중앙아 인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회도 아랍의 봄 이후 중동발 난민의 유입으로 유럽이 균열되고 테러 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아프간이 ‘제2의 시리아’가 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과 나토군을 탈레반이 8만 병력으로 몰아냈다는 승리의 선전전이 잠재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들’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이슬람국가(IS)로 몰려들었던 전투 요원들이 언제 아프간으로 향할지 모를 일이다.

결국 아프간의 미래는 탈레반에게 달려 있다. 종교 이념에 매몰된 공포 통치로 아프간을 다시 수렁에 빠뜨리지 않는 게 정답이다. 탈레반이 그 정도로 유연한 입장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탈레반은 그동안 “미국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있다”며 장기전을 벌여 왔다. 이젠 탈레반이 그 시계를 넘겨받았다. 대신 시간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아프간 국민과 이를 돕고자 하는 국제사회가 갖기 시작했다. 궁극적 승리자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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