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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 사살’ 깃발 들고 시작된 ‘20년 전쟁’, 미군 12만 명 파병에 2조 달러 퍼부었지만 베트남전 판박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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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호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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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항구적 자유’.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지 불과 26일 만인 10월 7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대규모 보복 공습에 나섰다.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 당시 집권 세력이던 탈레반의 수장인 무하마드 오마르를 축출하기 위해서였다.

미군, 아프간 입성부터 철수까지 #9·11 테러 26일 만에 아프간 공습 #알카에다·탈레반 산발적 게릴라전 #미, 작년 14개월 협상 끝 휴전 협정 #바이든 ‘질서 있는 철수’ 공언 무색

미국은 산악 지대가 많고 해안과 멀리 떨어져 있는 아프간 지형을 감안해 ‘선 융단폭격, 후 특수부대 전개’ 전술을 택했다. 이후 동맹국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미군은 개전 한 달여 만에 수도 카불 입성에 성공했다. 그해 12월 탈레반의 핵심 거점인 칸다하르가 함락되고 빈 라덴과 오마르가 도피하면서 전쟁은 싱겁게 끝나는 듯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하지만 알카에다와 탈레반은 쉽사리 백기 투항하지 않고 파키스탄 등 주변국으로 피신해 산발적 전투를 이어나갔다. 2003년엔 미국의 관심이 이라크 전쟁으로 쏠리면서 아프간 주둔 미군이 2만 명에서 6000명으로 줄자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게릴라전에 본격 돌입했다. 2006년 자살 폭탄 테러를 앞세운 ‘춘계 대공세’가 대표적이다.
탈레반의 위세가 날로 커지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아프간 주둔 병력을 증원하며 임기 내 아프간 테러 세력을 뿌리 뽑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전쟁 기간도 1차 세계대전(4년 3개월)과 2차 세계대전(6년) 기록을 갈아치운 터였다. 미국의 공세는 2011년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사살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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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4년까지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공언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이라크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아프간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프간 정세가 크게 요동치게 됐기 때문이다. 결국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10월 “아프간 정부군이 홀로 서기엔 아직 충분히 강하지 않아 미군 8400명을 계속 주둔시키기로 했다”며 철군 계획을 백지화했다.

미국이 주춤하는 사이 탈레반은 더욱 강성해졌다. 2016년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 407개 지역 중 3분의 1 이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아프간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미군 증원과 대규모 공세를 앞세운 ‘새 아프간 전략’을 발표했다. 아프간 재건 활동을 중시하고 미군 공습에도 제한을 뒀던 오바마 정부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행보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러면서도 물밑으로 탈레반과 협상을 이어가는 등 강온 양면 전략을 취했다. 결국 지난해 2월 미국과 탈레반은 ‘도하 합의’로 불리는 평화합의서를 전격 체결했다. 14개월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나온 휴전 협정이었다. 아프간 정부도 포로 5000명 석방 등을 내걸고 탈레반과 평화 협상에 나섰다.

이 같은 휴전 분위기 속에서 취임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4월 “9·11 테러 20주년이 되기 전에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며 철군을 선언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예상과 달리 탈레반은 지난 주말 전격적으로 수도 카불로 진격했고, ‘질서 있는 철수’를 공언했던 미국은 결국 20년간 2조 달러(약 2367조원)를 쏟아붓고 12만 명의 미군을 파병하고도 48년 전 베트남 전쟁 종식 때처럼 황급히 아프간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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