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난민 쏟아지고 이슬람주의 확산 우려, 중앙아시아 긴장 고조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50호 08면

SPECIAL REPORT

중국의 국경 경비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에 위치한 와한 회랑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접경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국경 경비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동북부에 위치한 와한 회랑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접경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인 탈레반에 넘어가면서 국제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이 손을 떼고 2001년 미국에 축출된 탈레반이 복귀한 사건 자체로도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미칠 충격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론 난민과 국내 피란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문제, 중기적으론 탈레반과 국제사회의 관계 재설정, 장기적으론 아프간 안정화라는 과제가 국제사회에 떨어졌다.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 #파키스탄·이란 등 6개국 국경 맞대 #난민 사태에 대비, 합동훈련 실시 #중, 신장위구르 무슬림 동요 경계 #탈레반, 가난 등 산적한 문제 많아 #해결하려면 국제사회와 손잡아야

특히 내륙국가인 아프간과 국경을 마주한 파키스탄(2670㎞)·타지키스탄(1357㎞)·이란(921㎞)·투르크메니스탄(804㎞)·우즈베키스탄(144㎞)·중국(91㎞) 등 6개국은 당장 난민 문제에 휘말릴 처지다. 유엔난민기구 등에 따르면 옛 소련 침공(1979~89년)과 내전(92~96년), 1차 탈레반 통치(96~2001년), 아프간 전쟁(2001~21년) 등 주요 계기 때마다 아프간 난민이 국외로 쏟아졌다. 아프간 전쟁 때만 해도 이란에 336만 명, 파키스탄에 143만 명이 몰렸고 유럽연합(EU)과 터키에도 70만 명 이상의 난민 행렬이 이어졌다.

관련기사

20년 만에 권력을 되찾은 탈레반이 자신들의 이슬람주의를 확산하면서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이슬람국가(IS)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테러 활동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도 제기된다. 하지만 탈레반은 아직 그럴 만한 경제력이나 글로벌 네트워크가 부족한 데다 탈레반의 본질과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런 우려가 당장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아프간 42%, 파키스탄 15%가 파슈툰족  

탈레반의 이념을 살펴보면 그들의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이슬람법을 자신들의 생각에 맞춰 다듬고, 여기에 ‘파슈툰왈리’라고 불리는 아프간 다수 종족인 파슈툰족의 규범을 합친 게 탈레반 사상의 본질로 볼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탈레반은 우선 19세기 영국 지배하의 인도에서 일어난 이슬람 개혁·부흥 운동인 ‘데오반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데오반디는 1867년 개혁을 촉구하는 울라마(이슬람 지식인·법학자)들이 인도 북부 데오반드의 다룰 울룸 신학교에 모여 주창한 운동이다. 영국의 인도 침탈과 무굴제국의 쇠퇴·멸망을 지켜본 이들 무슬림은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해서 독립을 되찾고 서구 문명의 영향에 맞서고자 했다.

이를 받아들인 탈레반은 1차 통치 시절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유일신 신앙을 해치는 우상숭배라며 국립박물관 소장품 10만 점 중 70%를 부쉈고 2001년엔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의 지시로 1500년 역사의 바미안 석불을 폭약으로 파괴했다. 같은 논리로 음악·영화·방송은 물론 인터넷도 금지했다. 사진과 그림을 걸어두는 것도 막았다. 축구·체스 등 스포츠와 오락, 심지어 연날리기나 애완동물 사육도 못 하게 했다. 여성들의 교육과 사회활동도 일절 금지했다. 현대 이슬람은 오염됐으니 중세 초기 이슬람 시대로 돌아가자는 이런 조치들은 국제적으로 탈레반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탈레반은 이 같은 이슬람 복고주의와 함께 ‘파슈툰왈리’를 사회 전역으로 확산하고자 했다. 손님을 환대하고, 종족과 부족의 명예를 목숨으로 지키며, 용맹·성실·공정하고, 가족이나 부족이 피해를 보면 반드시 복수해 정의를 실현하는 등의 종족 전통 관습법이다.

‘적에게 쫓기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한다’는 풍습도 2000년 이상 지키고 있는 파슈툰왈리 중 하나다. 2013년 미 해군 네이비실이 탈레반 지휘관을 잡으려다 실패한 레드윙스 작전 당시 유일한 생존자인 마커스 러트렐 하사를 현지 파슈툰족이 숨겨준 사건도 이에 따른 것이다. 당시 그를 숨겨준 부족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결국 그를 미군에게 넘겼다. 이 실화는 할리우드 영화 ‘론 서바이버’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파슈툰족을 기반으로 하는 탈레반이 이슬람법과 함께 종족 고유의 파슈툰왈리를 다민족 사회인 아프간 전역에 강요했다는 점이다. 남성은 턱수염을 기르고 여성은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하도록 한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탈레반과 달리 지역별로 개성이 뚜렷하고 종교적으로도 훨씬 유연한 아프간의 다른 민족들에게 탈레반의 이념과 주장을 주입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탈레반이 국경을 맞댄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이슬람주의를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민감한 지역의 무슬림 주민을 동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아프간은 동북부에 길고 좁게 촉수처럼 뻗은 길이 350㎞, 너비 13~65㎞의 ‘와한 회랑’을 통해 중국으로 연결된다. 이 회랑은 영국과 러시아가 제국주의 경쟁인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19세기 말 아프간 영토가 됐다. 러시아가 1893년 아프간 북쪽 동타지키스탄을 병합하면서 영국령 인도와 국경을 맞닿게 되자 영국이 이 지역을 아프간에 통합해 완충지대로 삼고자 했다.

벽지인 와한 회랑은 인구가 희박하고 교통이 불편하다. 북쪽은 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키스탄과 접경하며, 남쪽은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이 솟아 있고 동쪽 끝의 와흐지르 고개를 통해 중국과 연결된다. 붉고 뾰족한 돌산으로 둘러싸인 와흐지르의 국경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됐으며 변변한 접근로도 없다. 한때 서방에선 이 회랑을 통해 아프간 헤로인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고 경계했지만 워낙 벽지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런 만큼 탈레반이 이렇게 막혀 있는 국경을 뚫고 신장위구르에 침투해 지역 무슬림을 부추기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탈레반이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의 이슬람주의자들을 부추겨 투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마찬가지다. 현재 아프간 북쪽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는 러시아군 201 차량화 소총병 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병력 7000명에 전차 96대, 장갑차 300대, 야포 54문, 헬기 8대, 지상공격기 5기 등의 전력이다.

러시아는 지난 7월 타지키스탄과 연합훈련을 한 데 이어 지난 5~10일엔 아프간과 접경한 남서부 하틀론주 훈련장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3개국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지난 4월 미국의 아프간 철수 발표 후 정세 악화와 그에 따른 긴급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행보로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의 텃밭”이라고 미국과 탈레반에 미리 경고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타지키스탄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러시아와의 군사적 유대 강화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탈레반 복귀가 ‘사실상 핵보유국’이자 아프간과 가장 길게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미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 따르면 파키스탄 인구 2억2500만 명 중 15%(3375만 명)가 파슈툰족이고 18%(4050만 명)는 파슈툰어 사용자다. 인구의 44.7%를 차지하는 펀자브인에 이어 둘째로 많다.

아프간과 접경한 서북 지역 ‘카이베르 파크툰크와(파슈툰의 땅)주’는 3500만 인구의 80%가 파슈툰어 사용자다. 파키스탄의 유력 인사 중에도 파슈툰족이 적잖다. 당장 임란 칸 총리와 핵 개발을 주도한 압둘 칸 박사도 파슈툰족이다. 이를 근거로 서방에선 정보·보안기관을 포함한 파키스탄 군과 정부가 탈레반을 도와왔다고 우려했지만 파키스탄은 이를 거듭 부인해 왔다.

국제사회도 탈레반과 소통 고민할 때

서방의 우려는 파슈툰족이 같은 민족끼리 하나의 나라를 만들거나 서로 도와야 한다는 인식이 강할 것이란 추측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국민국가나 민족국가는 서구의 개념일 뿐, 부족사회 개념이 강한 파슈툰족에 적용하기는 무리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파키스탄의 주요 인사들이 탈레반과 같은 파슈툰족이란 이유로 팔이 안으로 굽는 일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들에게 부족·종족이나 국가는 각기 다른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수를 종합해볼 때 현재 상황에서 탈레반이 서구가 우려하는 ‘국제 테러’에 나설 가능성은 그다지 커보이지 않는다. 취약한 국력은 물론 종교와 이념 측면에서 아프간 내부의 ‘지역성’이란 구심력이 글로벌 무슬림 사회로 뻗어나갈 원심력보다 훨씬 약하다는 본질적인 이유에서다.

지금 아프간 앞에는 난민과 국내 피란민, 여성 인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달러 수준인 가난 문제 등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탈레반도 인도주의 기구를 비롯한 국제사회와 손을 잡아야 한다. 당장 지난주 글로벌 백신 공동 분배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가 카불에 운송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130만 회분의 분배부터 서둘러야 한다. 국제사회도 진정 아프간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탈레반과 어떻게 소통해 나갈지 고민해야 할 때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탈레반 정부가 어떻게 강성으로 치닫는지는 이미 한 차례 증명이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