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부장판사 결국 구치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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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행 전 고법 부장판사.

법조 브로커 김홍수(58.수감)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조관행(50) 전 고법 부장판사가 9일 새벽 서울 성동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 김씨로부터 금품을 받아 사전영장이 청구된 김영광(42) 전 검사와 민오기(51) 총경도 함께 구속수감됐다.

구속 전 피의자 신문(영장실질심사)을 심리한 이상주 서울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는 사법시험 4년 선배인 조 전 부장판사에 대해 "고도의 청렴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 고위 법관의 범행인 데다, 동료 법관의 재판에 대한 청탁 명목으로 거액을 받아 사안이 중대하다"며 "참고인에게 금품을 제공하고 진술 번복을 유도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발부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검사와 민 총경에 대해서는 각각 "검사가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았다""수사 실무자가 거액을 수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조 전 부장판사가 이번 수사 시작 직후 김씨의 지인에게 2000만원을 건네며 사건 무마를 시도한 점을 들어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조 전 부장판사는 혐의사실 대부분을 부인했다. 일부 인정한 금품 수수에 대해서도 "대가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조 전 부장판사는 김씨로부터 2001년 이후 5~6건의 민.형사 및 행정소송 청탁과 함께 현금과 수표 6000여만원 등 1억3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가법 알선수재)로 7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김 전 검사는 2004년 김씨 내사사건을 종결한 뒤 1000만원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를, 민 총경은 2004년 말 김씨로부터 특정인에 대한 수사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특가법 뇌물수수)를 각각 받고 있다.

?대가성 두고 공방=조 전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법원에 출두하면서 취재진에 "국민과 법원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혐의를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도 어마어마해서 허구가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8일 오후 2시 시작된 신문은 오후 9시쯤 끝났다. 통상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가량 진행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사건 청탁 대가로 돈을 받았는지와 구속 사안에 해당하는지 등을 놓고 검찰과 조 전 부장판사 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조 전 부장판사는 직접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검찰의 신문에 대해 "검찰이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야지 '기억이 안 납니다'라고밖에 답할 수 없도록 묻는 게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조 전 부장판사는 그러나 검찰에서 당초 "돈을 주고 구입했다"고 진술했던 1000여만원 상당의 가구에 대해 "(김씨로부터) 선물로 받았다"고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질심사가 끝난 뒤 조 전 부장판사는 "영장의 범죄 사실은 너무 억울하다"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룸살롱을 다녔다면 야근은 언제 했겠나"라고 반문했다.

?"검사는 혐의 인정, 총경은 부인"=민 총경은 이날 법정에서 "돈을 받은 바 없다"며 혐의 내용을 부인했다. 검찰에서 시인했던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민 총경은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어떻게든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었다"고 답변했다. 반면 김 전 검사는 혐의를 모두 시인해 20여 분 만에 신문이 끝났다.

이날 법원 안팎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법원과 검찰 수뇌부는 실질심사의 진행과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파악하는 등 촉각을 곤두세웠다. 법원 직원들은 심사가 진행되는 법정의 출입 통제를 강화했다.

대법원 16일 대국민 사과

대법원은 16일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전국 법원장회의를 열고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한 대국민 사과와 후속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8일 밝혔다.

장혜수.백일현.박성우 기자

※본지 실명보도 이유=본지는 그동안 김홍수씨 로비 의혹 사건에 관련된 피의자들의 이름을 영문 이니셜로 표기해 왔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나온 혐의가 의혹 수준이어서 이들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혐의가 구체화됐으며, 공인이란 점과 독자의 알권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9일자부터 실명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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