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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조선왕조 리더십' 펴낸 오인환 前 공보처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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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오인환(吳隣煥.64) 전 공보처장관. 그가 '역대 최장수 장관'이란 타이틀 대신 역사서를 낸 작가로 대중 앞에 섰다. 그의 장관 재임기간은 5년. 1993년 김영삼(金泳三.YS) 전 대통령과 함께 취임했다가 함께 퇴임했다. 풍상이 잦은 YS 정권이었지만 그는 개각 때마다 자리를 지켰다.

그런 吳전장관이 장관을 그만둔 직후 시작해 5년6개월 걸려 완성한 책은 '조선왕조에서 배우는 위기관리의 리더십'(열린책들)이다.

"조선왕조의 정치를 리더십의 관점에서 풀어쓴 일종의 역사 비평서입니다. YS나 DJ.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을 분석하듯이 영.정조와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분석해 본 책입니다."

자신이 몸으로 경험한 현대정치 대신 왜 하필 조선왕조일까.

그는 "5백19년을 유지해온 조선왕조의 저력은 통치체계의 우수성과 효율성"이라며 "그런 정치 유산이 일제 36년의 왜곡된 사관 등에 의해 오늘의 우리에게 제대로 전수가 안돼 늘 안타까웠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리더십에 대한 그의 분석은 흥미롭다. 태조 이성계를 "장군으로서는 성공했지만 국왕으로서의 위기 관리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식이다. 후계구도 정립의 실패, 건국 이후 나라를 이끌 비전의 부재 등이 바로 이성계의 실패라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8개월 만에 급락한 이유를 묻자 그는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 실패에 빗대 진단했다.

"조광조 등의 개혁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자기들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군자(君子)라 한 반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소인(小人)이라고 했습니다. 선명성을 강조하려 중간에 있는 사람들도 소인으로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군자는 적고 소인은 많은 법입니다. 결국 다수를 적으로 돌려 스스로 고립되는 결과를 빚었죠. 노무현 정권의 '코드론'은 마치 조광조의 군자론을 연상케 합니다."

공보처 장관 출신으로 盧대통령의 언론관에도 쓴소리를 했다.

"언론개혁은 제도로 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진두에서 언론과 전쟁을 선포하고 싸우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언론과 직접 싸워 생기는 내상(內傷)은 국가지도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소신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지난 6일 첫 인터뷰 후 盧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으로 정국이 뒤숭숭해진 지난 12일 오후 吳전장관과 다시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큰일났다"는 말부터 했다. 그러면서 "YS도 그랬고, DJ도 그랬지만 대통령의 권력은 취임식날 1백%에서 날이 갈수록 조금씩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집권 8개월 만에 재신임이란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吳전장관은 또 "특히 위기관리 측면에서 보면 비주류 세력이 주류를 제치고 정권을 잡은 盧대통령 시대는 남북갈등에 동서갈등, 거기다 보혁갈등까지 겹쳐 건국 이래 가장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기의 시대"라며 "비우호세력을 껴안는 상생의 정치를 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대 최장수 장관 기록을 세운 그는 참모들에게도 나름의 장수 비결을 제시했다.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정확히 꿰뚫고, 국정운영 방향을 미리 예측해 준비하고, 공인으로서 자신의 일에 전력투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엄격한 관리입니다. 역대 정권의 권력 누수와 도덕성 훼손은 대통령의 주변 관리 실패에서 왔습니다."

'작가 오인환'은 '조선왕조…' 의 후속으로 '이승만 시대에서 노무현 시대까지의 위기관리 리더십' (가제)도 준비 중이다.

글=박승희,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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