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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서 발 빼 중국 압박…바이든 외교, 동맹이라도 손절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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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을 점령해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미군 철수 결심은 달라지지 않았다. 15일(현지시간) 미 국무부에 따르면 아프간 주재 미국대사관에선 인력이 완전히 철수했고 성조기도 내려졌다. 미국에서 ‘제2의 사이공 함락’이라는 비판이 거세고, 탈레반 집권 아래 여성 인권 등에 대한 국제적 우려가 크지만 “아프간은 아프간 국민의 책임”이라는 바이든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바이든은 지난 14일 미국인 탈출 지원을 위한 미군 5000명 파병 승인을 발표하면서 “아프간 정부군이 자신의 나라를 지키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미군이 1년 또는 5년을 더 주둔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제아무리 동맹이나 동반자라도 자신을 지킬 역량과 의지가 없다면 과감하게 ‘손절매’하고 미국의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새로운 외교 방향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우디 배치한 사드체계 철수 등 #군사자원 ‘선택과 집중’ 본격화 #주한미군의 중국 견제 임무 강화 #한국에 더 많은 역할 주문할 듯

바이든이 스스로 강조해 온 ‘가치외교’에 반한다는 비판에도 철군 결정을 고수하는 이유는 미국에 대한 위협 재평가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동에서 발을 빼고 더 큰 위협인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동북아 세력 균형에 대한 문제로, 한국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입지와도 직결된다.

일요일인 지난 15일 백악관을 떠나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전용 별장에 머물고 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팀 및 고위 관료들과 화상회의를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긴급 브리핑을 받고 있다. 이 사진은 백악관이 제공했다. [AP=연합뉴스]

일요일인 지난 15일 백악관을 떠나 메릴랜드주 캠프데이비드 대통령 전용 별장에 머물고 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팀 및 고위 관료들과 화상회의를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긴급 브리핑을 받고 있다. 이 사진은 백악관이 제공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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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미 국방부는 지난 2월 바이든의 지시에 따라 전략을 재평가하는 ‘글로벌 포스처 리뷰’를 진행 중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7월 “중국 미사일의 정확성이 높아지면서 태평양 지역 미군 배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며 “미국은 역내 병력을 확산 배치하고, 강화하며, 동맹이 더 많은 역할을 하도록 밀어붙여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은 아프간뿐 아니라 중동에서 전반적으로 미사일과 병력의 감축을 계획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6월 “미 국방부가 사우디에 배치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철수하고, 중동의 전투비행단도 감축한다”고 보도했다. 이란 핵합의(JCPOA) 복원 추진과 맞물리면서 대중동 군사력 투입을 줄이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해 중국을 압박하는 게 미국의 ‘큰 그림’이다.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의 역할’ 요구를 한층 강화할 것임을 예고한다. 한국이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이유다.

이미 미국에선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뿐 아니라 중국 위협에도 대응하는 걸로 인식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현재 미 상원에서도 대중 견제 전략을 논의 중인데, 그 핵심의 하나가 동맹의 안보 역량 강화”라며 “단순한 병력 증강보다 주한미군이 운용할 수 있는 전략자산 투입 등을 통한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안다”고 소개했다.

한·미 동맹의 근간인 상호방위조약의 범위가 한반도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주둔 미군의 역할이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일본 주둔 미군의 규모를 유동적으로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지역 정세에 따라 순환시킬 수 있는 전력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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