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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매달린 시민들…탈레반 "복수 안한다, 아프간 남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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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아프간)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전쟁은 끝났다"며 사실상 승리를 선언한 가운데, 아직 미군의 통제 범위에 있는 카불 공항엔 탈출을 노리는 시민들이 몰려들어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탈레반 장악한 아프간서 필사의 탈출 #활주로까지 장악, 민항기 운영중단 #국제사회 "테러 온상 될까" 우려도

아프간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카불 국제 공항에 몰려들어 비행기에 매달려 있다. 트위터 캡처

아프간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카불 국제 공항에 몰려들어 비행기에 매달려 있다. 트위터 캡처

AFP·AP·로이터 등은 15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간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국기를 내리고 탈레반기를 게양했다고 전했다.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은 철수 마지막 단계로 성조기를 내렸다. 앞서 탈레반이 미군의 주력 헬기인 블랙호크에 탈레반기를 꽂고 승리를 과시하는 사진도 SNS 등을 통해 퍼졌다. 이날 밤 카불 곳곳에서 폭발음과 총격소리가 들렸다고 현지 방송이 전했다.

탈레반 무장세력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탈레반 무장세력이 1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엑소더스 행렬…수천명 은행·공항 몰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카불이 함락되자 카불 시민들은 크게 동요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시민들이 돈을 찾아 국외로 탈출하기 위해 은행과 공항으로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이미 아프간의 주요 도시를 탈레반이 장악한 상황에서 유일한 탈출 창구는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뿐이다. 민항기 운영이 사실상 중단된 가운데 수천명이 공항으로 몰려와 비행기를 태워달라며 활주로를 장악했다. 공항 운영 자체가 마비되자 미군은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총을 하늘로 발사하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이날 "미군 발포로 공항에서 아프간인이 여러명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최소 5구의 시신을 보았다고 전했지만 사인이 총격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압사에 의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한 구호단체가 운영하는 병원에는 이날 하루 카불에서 80명의 부상자가 이송됐다.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카불의 국제 공항으로 몰려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카불의 국제 공항으로 몰려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은행에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앞다퉈 현금을 인출하고 달러 사재기가 벌어졌다. 아프가니·달러 환율은 지난주 달러당 80아프가니에서 100아프가니로 25% 급등했다.

국민에게 상황을 알리고 계획을 밝혀야 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카불 함락 위기에 종적을 감췄다가 이날 오후에서야 페이스북을 통해 도피를 시인하는 성명을 내놨다. 대통령에 이어 경찰까지 도망치자, 탈레반은 직접 치안에 나서겠다고 발표하고 군대를 투입했다. 오토바이·경찰차, 미군이 지원한 정부 군용차를 나눠탄 탈레반 군대가 카불 거리를 가득 메웠다.

아프가니스탄의 가니 대통령.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의 가니 대통령. 연합뉴스

탈레반 "복수 계획없다. 아프간에 남아라" 

하지만 우려했던 무자비한 복수나 무정부상태의 혼란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 분위기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간 정부나 군에서 일한 모든 이들은 용서받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복수할 계획이 없다"면서 "아프간인들은 두려움에 도망치지 말고 아프간에 남아달라"고 전했다. 또 35만명에 달하는 아프간 정부군과 경찰 병력에 대해 "무기를 반납하고 탈레반에 합류하면 사면하겠다"며 "기존 정부군에 등록된 사람들을 예비군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샤힌 대변인은 영국 BBC 방송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향후 수일간 아프간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원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또다른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주민과 외교 사절의 안전을 지원할 것이며, 모든 아프간 인사와 대화할 준비가 됐다. 필요한 보호를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둘 사타르 미작왈 아프간 내무장관은 "현 정부를 과도정부로 전환하고 평화로운 권력 이양이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로이터는 과도정부의 수반은 알리 아흐마드 자랄리 전 내무부장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진입하고 아프간 정부가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는 등 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현지 한국대사관에도 비상이 걸렸다.   카불 주재 한국대사관은 사태가 악화하면 철수조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아프가니스탄 라그만 지방의 탈레반 대원들. AFP=연합뉴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1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진입하고 아프간 정부가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하는 등 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되자 현지 한국대사관에도 비상이 걸렸다. 카불 주재 한국대사관은 사태가 악화하면 철수조치를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아프가니스탄 라그만 지방의 탈레반 대원들. AFP=연합뉴스

美 "2년내 알카에다 같은 조직 재건 가능성" 

탈레반의 온건한 메시지에도 국제사회는 아프간의 미래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아프간이 테러의 인큐베이터 역할로 돌아가 세계의 시한폭탄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이 "아프간에서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이 재건하는 데 2년이 채 안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아프간이 테러의 온상이 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국제적 노력을 통해 아프간이 테러에 다시 빠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 로이터=연합뉴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이에 대해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은 IS나 알카에다의 잔당이 세력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지방 탈레반 세력과 테러 조직이 뒤섞여 새로운 형태의 테러 프랜차이즈가 만들어질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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