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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경제학자의 걱정…“부동산 버블 커져도, 꺼져도 문제”

중앙일보

입력

김인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인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서울대에서 33년을 강의하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등을 지낸 원로 경제학자가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화두를 던졌다. 2013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위기극복 경제학’을 쓴 김인준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후 한국의 경제위기를 주제로 한 책을 쓸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는 8년 만에 ‘위기의 한국경제’로 돌아왔다.

지난 6일 김 교수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한국경제에 관한 진단을 들어봤다. 김 교수는 1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부동산 과열로 인한 자산 양극화 문제를 여러 차례 입에 담았다. 그는 “젊은 세대에서 집을 못 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있다”며 “부동산 거품(버블)이 계속 커져도 문제고, 일순간 꺼져도 문제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극화와 코로나19 위기 상황은 포퓰리즘의 토양을 만들었고, 되레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경제는 정말 위기인가
상당히 어려운 시기다. 지금의 부동산 과열은 70년대 석유파동, 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도 볼 수 있다. 미·중 대립 격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경제까지 어려운 상황이라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산 가격만 높아지고 있다. 이런 식의 자산양극화는 상실감까지 키워 사회 불안정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문제다.
양극화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순자산 배율은 2017년 말 7.8배에서 지난해 9.2배까지 올라갔다. 자산을 가진 사람은 소득이 있는 사람보다 더 빠르게 부자가 됐다는 뜻이다. 국민생산 관련 고정자산은 선진국과 유사하게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결국 부동산 과열이다. 정부가 잘못된 부동산 정책과 저금리 정책을 쓰다 보니 부동산 과열을 초래했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를 2017년 11월을 100으로 했을 때 지난 4월 164.9까지 올랐다. 3년여 동안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65% 올랐다는 거다. 아파트를 사는데 이전까지 20년이 걸렸다면 지금은 33년이 걸린다.
자산 양극화가 어떤 문제를 초래하나
GDP보다 훨씬 빠르게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는 건 결국 ‘거품(버블)’인데 이 상황이 지속하면 청년 세대는 주거를 마련할 수 없는 거다. 반대로 거품이 꺼진다고 하면 주택담보 대출 부실로 인한 금융 불안정이 우려된다. 이미 저금리 정책으로 가계부채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해 3분기 우리나라 가계·기업·정부부문 부채 총합은 4900조원으로, 2008년부터 12년간 145%가 증가했다. 세계 평균 증가 속도(31%)보다 4배 이상 빠르다. 부채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버블 붕괴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재현할 수도 있다.
해법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GDP가 부동산보다 빠르게 늘어 GDP 대비 국민순자산 배율을 떨어뜨리는 게 중요하다. 완만한 금리 조정도 필요하고 결국은 여‧야가 어떤 식으로든 공동 대처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양극화와 코로나19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포퓰리즘 정책이 나오면서 문제를 키우고 있다. 재난지원금 같은 게 대표적인데 상근근로자까지 지원금을 받아봐야 결국 부동산이나 주식, 암호화폐 자산 투자로 사용하게 된다. 코로나19로 직접 피해를 본 자영업자·소상공인을 골라 두텁게 선별 지원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최근 국회와 정부는 국민 88%에게 25만원씩을 지급하기로 했다.)
김인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인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포퓰리즘이 또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필요하지만 인기 없는 경제문제엔 손을 대지 않고, 진영 논리에 따라 정책을 펴고 있다. 장기‧구조적 문제엔 대안을 내지 않는다. 이런 것도 포퓰리즘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문제, 산업‧노동개혁에 연금개혁까지 모두 시급하지만, 정치권에서 제대로 말조차 하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국가가 초등학교 전까지 양육을 책임지는 식으로 해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이 걸려 있다 보니 제대로 된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국가가 3~6세까지 의무 교육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위기 극복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자산 시장 과열을 극복하고, 장기적 재정 균형 방안을 세워야 한다. 또 세대 간, 장‧단기간 정책의 균형을 맞춰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비대면 산업이 성장하듯 산업구조가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산업계와 노동계가 모두 발맞춰야 한다. 코로나19가 닥치기 전부터 확장 재정 정책으로 부채 늘리고 금리를 낮췄다. 장기적으로 펼 수 있는 정책 카드가 제한됐는데 이 또한 정상화해야 한다. 한국은 훌륭한 인적자원을 가진 나라다. 여‧야 모두가 당장의 표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대책을 세우고 협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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