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으로 일어섰다 독선으로 주저앉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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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렇다 할 만한 조직도, 변변한 정치 경력도 없이 출마한 그의 당선은 '민의(民意)의 혁명'이란 찬사를 받았다. 기득권에 도전하는 개혁은 의회의 불신임안 의결에 부닥쳤지만 선거 압승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하지만 반대세력에 대한 포용과 설득보다는 옳다고 생각하면 뭐든지 밀어붙이는 방식을 택했던 개혁 드라이브는 어느새 독선으로 변해 있었고, 등 돌린 민의는 선거로 그를 심판했다.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사진) 일본 나가노 현 지사의 지난 6년간 발자취다.

소설가 겸 시민운동가였던 다나카는 2000년 무소속으로 지사 선거에 나와 당선했다. 관료 출신이 대대로 지사 자리를 이어받던 40년 아성을 깨뜨린 것이었다.

취임 초기 다나카는 '탈(脫) 댐 선언'으로 대표되는 개혁정책으로 전국적 지지를 받았다. 예산 낭비와 공무원.의회.업체 간 유착의 온상이란 비판을 받아온 댐 건설을 공사 중임에도 과감히 중단시킨 것이다. 관.언 유착을 끊겠다며 현청 출입기자제를 폐지하는 대신 투명행정을 펴겠다며 집무실을 유리창으로 들여다보이게 개조한 것도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다. 자민당이 다수인 현 의회는 개혁에 반발, 2002년 불신임안을 통과시키자 유권자들은 재선거에서 그 전보다 더 많은 표를 몰아주었다.

하지만 독선적으로 개혁을 밀어붙이는 사이 지지자들은 점점 멀어져 갔다. 개혁에 동반되는 주민들의 고통을 다독거리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학생 수 감소에 맞춰 현립 고교를 줄이겠다는 정책으로 벽지 주민의 반발을 산 것이나 현청의 각종 외곽단체 54개를 없애 예산을 절감하자는 정책으로 일자리를 위협한 것이 대표적 사례였다. 주민 생활에 영향을 주는 정책임에도 기초지자체와의 사전 협의를 소홀히 한 것도 비판을 받았다. 그 결과 "지사와 의회 간의 대립으로 지난 4년이 지나갔다"고 현지 언론은 지적했다.

6일 실시된 선거에서 다나카는 무소속 무라이 진(村井仁) 후보에게 패했다. 그가 얻은 표는 4년 전에 비해 60% 수준에 머물렀다. "같은 일을 해도 방법이 나쁘면 반대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찬반은 종이 한 장 차이 아니냐." 다나카에게 반기를 든 한 기초 지자체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패인 분석이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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