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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아이 美미혼모, 실직에도 벌이 2배로…코로나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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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인 가족의 모습. [AP=연합뉴스]

한 미국인 가족의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미주리주(州) 세인트 찰스에 사는 다섯 아이의 미혼모 캐서린 굿윈(29)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빈곤 가계의 가장이었다. 연 3만3000달러(약 3796만원)를 버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가 코로나19로 실직했다. 처음엔 다섯 아이의 밥값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차를 몰고 가 극단적인 상상도 했었다.

美, 경기부양책으로 빈곤 인구 45% 급감 #이달부터 아동 1명당 매달 300달러 지급

다행히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조 바이든 행정부에 걸쳐 통과된 3차례 코로나19 부양책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노동을 하지 않고도 코로나 확산 전보다 많은 돈인 총 6만7000달러(약 7670만원)를 얻었다는 사실이었다. 실업 수당은 팬데믹 전보다 3배가 됐고, 식품 바우처 혜택도 늘었다. 세금도 절감됐고 직접 지원금도 받았다. 그는 “도움이 없었다면, 말 그대로 어떻게 살아남았을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노숙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美, 빈곤 인구 코로나 전보다 45% 감소”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의 한 교사가 주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나눠주고 있다.[AP=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의 한 교사가 주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나눠주고 있다.[AP=연합뉴스]

2021년 미국의 빈곤 인구가 코로나19 발병 이전인 2018년 대비 2000만명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미국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어반연구소(Urban Institute)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빈곤율은 13.9%였는데, 올해 7.7%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율이 절반에 가까운 45%에 이른다. 아동 빈곤율은 14.2%에서 5.6%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는데, 감소율은 61%에 달한다. NYT는 “미국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빈곤을 이렇게 많이 감소시킨 적이 없다”고 전했다. 전염병이 확산하기 전보다 일자리가 700만개 감소한 상황에서 오히려 빈곤율이 줄어든 ‘코로나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비용을 치르면서 얻은 결과다. 미국은 지난해 3월 이후 의회에서만 6조 달러(약 6700조원)의 부양책을 통과시켰고 그중 4조 달러 가량을 이미 지출했다. 지난 5월 재정·예산 싱크탱크인 ‘책임 있는 연방 예산위원회’(CRFB)에 따르면 4조 달러는 중소기업 지원에 1조 2000억 달러, 가계 직접 지원금으로 8040억 달러, 실업급여 약 5590억 달러, 각종 세금(3340억 달러), 의료시스템(3269억 달러) 지원 등에 쓰였다. 5월 기준 미국에는 아직 재정부양책으로 쓸 돈 2조 달러가 남았다. CRFB는 “기록적인 재정적자가 예상된다”고 했다.

[자료제공=CRFB ‘Covid Money Tracker’]

[자료제공=CRFB ‘Covid Money Tracker’]

NYT는 “미국의 주요 지원 프로그램에 쓰인 비용은 1년 사이 4배 증가한 것으로 예상된다”며 “빈곤율의 놀라운 감소는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고, 그러지 않았으면 수백만 가구가 빈곤에서 탈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제시하는 빈곤 기준은 1인 가구 소득 연 1만2880 달러(약 1475만원), 4인 가구 연 2만6500 달러(약 3035만원) 등으로 세분화돼있다.

민주당 “빈곤 퇴치 입증” 공화당 “지속 가능하지 않아”

조만간 미국의 지원 프로그램 규모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아동 빈곤율(21.2%) 개선에 영향을 준 프로그램은 확대하기로 했다. 올해 3월 통과된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 예산으로 이달 15일부터 자녀가 있는 가정에 양육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매달 6세 이하 자녀 1명당 최대 300달러(약 34만원), 7~17세 자녀 당 270달러(약 30만원)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세액 공제 형태에서 한 발 나아간 제도다. 전문가들은 400만명의 아동이 빈곤에서 벗어나게 돼 미국의 아동 빈곤율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미국 코네티컷주(州)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AP=연합뉴스]

미국 코네티컷주(州)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AP=연합뉴스]

워싱턴 정가는 논쟁 중이다. 민주당은 아이가 있는 가정에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를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하자는 입장이다. 진보적인 정치인들은 ‘빈곤 감소’라는 새로운 수치는 정치적 선택과 정부의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빈곤을 퇴치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며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은 “이런 지출이 지속할 수 있지 않고, 장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맞섰다. 공짜 돈이 근로 의욕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는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공화당은 아동 1인당 300달러 지원 정책은 실패한 복지 정책으로의 회귀라고 규정했다.

“노동 소득보다 지원금 많아 잘못 설계”

지난 15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학교에서 급식 서비스 직원들이 주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나눠주기 위해 음식을 포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5일 로스앤젤레스(LA)의 한 학교에서 급식 서비스 직원들이 주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나눠주기 위해 음식을 포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의 도움으로 실직 상태에서 다섯 아이를 전보다 풍족하게 돌볼 수 있었던 캐서린 굿윈도 ‘정부의 현금 뿌리기’에 대해 엇갈린 감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주위 사람들은 그 돈으로 TV를 사거나, 마약을 사는 사람도 있었다”며 “납세자들이 왜 이런 돈을 내줘야 하나”라고 비판했다. 다만 “‘사회적 안전망’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유익했다”고 덧붙였다.

부양책이 잘못 설계됐다고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버는 돈보다 지원금으로 더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은 원조 프로그램 설계가 제대로 고안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시카고대학의 경제학자 브루스 마이어는 “우리는 이전엔 한 번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출했고, 여러 사람의 어려움을 극적으로 줄였다”며 “하지만 이는 매우 비싸고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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