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 하긴 하는 겁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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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노무현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서울=연합]

“설마했는데 정말 국민투표 하긴 하는 거냐.”

13일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12월15일 전후’라는 구체적 날짜까지 제시하며 재신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자 시민들은 재신임 투표가 부쩍 현실로 다가왔음을 실감하는 표정이었다.

자영업자 박상렬(43)씨는 “이렇게 불안한 상태로 계속 가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털고 새로 시작하는 게 좋다고 본다”며 “국민투표에서 재신임을 얻는다면 대통령이 다시 강하게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반면 회사원 정병수(47)씨는 “국민투표에 참여해 불신임 하겠다”며 “워낙 대통령 노릇을 못해서 바꾸고 싶었는데 본인이 재신임을 묻겠다니 이번 기회에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정치 무관심층도 여전했다.학원강사 梁모(34)씨는 “12월15일이 월요일이라 연휴인 것 빼놓곤 투표에 아무 관심없다”며 “재신임이 되거나 말거나 정치가 뭐가 달라지겠냐”고 반문했다.

절차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경희대 김민전(정치학)교수는 “정책과 무관한 백지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것은 위헌 가능성이 높아 차라리 정치개혁법안과 연계된 신임투표를 하는게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의 입장도 제각각이었다.참여연대는 “재신임 투표 자체보단 재신임까지 묻게된 현 상황의 근본적 해결이 더 중요하다”며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는다면 연말에 개혁인사를 전진배치하는 쪽으로 인적쇄신을 이뤄야 한다“고 주문했다.YMCA는 “대통령이 조기 재신임 일정을 제시한 것은 정치적 혼란 수습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환영”이라며 “정치권은 대통령이 밝힌 재신임 일정에 협조하라”고 촉구했다.‘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盧대통령은 재신임을 묻기 전에 최도술 전 비서관의 혐의에 대한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투표 자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박인호 상임회장(59)은 “재신임투표가 정치적 곤경을 모면키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경우 새로운 정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며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투표때문에 정치·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경우 제2의 외환위기가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대 장덕진(사회학)교수는 盧대통령의 송두율 교수 관련 즉석 발언에 대해,“宋교수의 인간적·학문적 측면은 법적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 고려할 문제”라며 “법적 통과가 안 된 상태에서 대통령이 언급할 단계는 아니었다”고 평가했다.주부 최경옥(38)씨는 “재신임 투표하는 것보다 대통령이 밝힌대로 토지공개념을 도입해 집값을 잡는게 더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될 것같다”고 말했다.

국민투표 지원부서인 행정자치부는 이날 관련 부서별로 회의를 열고 국민투표 지원책을 논의했다.행자부는 오는 11월초 전국 시·군·구의 선거담당공무원들을 소집해 투개표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또 이번 신임투표가 현행 주민투표법에 의해 치러질 공산이 큰 만큼 법안을 서둘러 손질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검토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김정하·고란·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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