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대화합을 연주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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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시아 국가들이 음악을 통해 평화롭고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함께 음악으로 교류할 수 있는 세상이 곧 천국 아니겠습니까."

공연 직후 무대에 오른 '마에스트로' 정명훈(53)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수없이 많은 무대에 섰던 그였지만 이날은 각별했다. 아시아의 걸출한 연주자들로 최고의 무대를 만들겠다며 1997년 자신이 창단한 '아시아 필하모닉'. 2000년 이후 재정문제로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던 이 오케스트라를 인천광역시 지원으로 6년 만에 다시 지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4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 이어 5일 저녁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10주년 공연'은 아시아 화합의 대하모니였다.

이번 공연에는 세계 31개 교향악단에서 활약 중인 한국.중국.대만.일본 출신 연주자 100명이 참가했다. 악장은 대만 태생으로 줄리아드 음대를 나온 로버트 첸(시카고 심포니 악장). 그 옆으로 서울시향 악장인 데니스 김이 자리를 잡았다. 첼로 수석은 중국 상하이 태생의 하이 예니(뉴욕 필하모닉 부수석), 트롬본 수석은 야마모토 고이치로(시애틀 심포니 수석). 이 밖에 베를린 도이체 심포니, 뮌헨 필하모닉 등 유럽서 활동 중인 아시아 단원들이 대거 참가했다.

프로그램도 이채로웠다.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등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테마로 했다. 분쟁과 갈등 속에서 꽃피운 사랑 이야기에 이어 신나는 춤곡인 라벨의 '라 발스'로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최근 미묘한 긴장 속에 있는 한.중.일 관계를 음악으로 풀어보자는 의도가 배어있다고 했다.

정씨는 "세계 평화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문화고 다음은 스포츠"라며 "스포츠에는 이기고 지는 승부가 있지만 문화에는 그런 것 없이 모두 좋을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활짝 웃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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