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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① 소설 - 구효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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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명두'

◆ 줄거리=나는 죽은 몸으로 20년째 서 있는 굴참나무다. 산 아래 판자촌을 쓸어내고 아파트가 들어서자 나 역시 뿌리째 뽑힐 뻔했다. 그러나 명두집이 온몸을 던져 나를 지켰다. 명두집은 내 밑에 제 속으로 낳은 아이 셋을 묻었다. 사람들은 까맣게 모르는 일이었다. 마을에선 명두집이 아이를 낳자마자 항아리에 가둬 죽인 뒤 그 손가락을 잘라 품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을 품은 아이의 유골이 명두(明斗)다. 명두로 귀신을 부릴 줄 알게 된 그녀를 사람들은 명두집이라 불렀다. 밥 먹듯 굶어대던 시절, 사람들은 자식을 남에게 보냈다. 그도 안되면 명두집 처럼 땅에 묻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죽음은 끝없이 생명을 만들고, 삶은 끝없이 죽음을 낳았다.

(문학.판 2005년 가을호 발표)

◆ 구효서 약력

▶1958년 인천 강화 출생 ▶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 '라디오 라디오'(95년) '몌별'(2001년) 소설집 '늪을 건너는 법'(90년)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93년) '깡통 따개가 없는 마을'(95년) '도라지꽃 누님'(99년)'시계가 걸렸던 자리'(2005년) 등 다수 ▶한국일보 문학상(94년) 효석문학상(2005년) ▶2006년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명두'

'죽음은 삶을 이어주는 것'
치밀한 구성·문체 드러내

구효서는 올해 황순원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오른 소설가 중 최연장자다. 실제론 1957년생이지만 호적에 한해 늦게 오르는 바람에 한 살 깎였는데도 그렇다. 그가 유년 시절을 보낼 때만 해도 호적에 한두 해쯤 늦게 오르는 건 흔한 일이었다. 절대 빈곤에 시달리던 그땐 돌 상을 받기 전에 많이들 죽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 명두집은 제 아이를 죽여 굴참나무 밑에 묻었다. 죽은 자식의 혼을 받아 점을 치고, 귀신 씐 사람을 살려냈다. 복화술로 아기 목소리 같은 새소리를 낼 때 사람들은 그녀가 가슴에 품고 있을 명두(접신 도구로 쓰이는 아기의 유골)를 떠올렸다. 아픈 이들은 병원 대신 명두집을 찾았다. 명두집은 호통쳤다.

'불망! 잊은 게 있지? 잊은 게 있어, 그게 너를 살린 건지도 모르고.'

그러면 사람들은 살기 위해 묻었던, 죽은 자식을 떠올렸다.

소설 속에서 명두집은 죽는 날까지 매일같이 죽음을 품은 굴참나무를 찾고, 반대로 죽은 굴참나무는 명두집의 삶을 지켜본다. 죽음은 이렇게 삶 속에서 살아 숨 쉰다.

작가는 "죽음이 잊히는 순간 삶은 타락하고 문드러진다. 죽음은 우리 삶이 생생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끝없이 방부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소설 속 굴참나무는 명두집이 아이를 묻을 때만 해도 깊은 산중에 있어 남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그러나 먹고 살 만한 세월이 와 산중턱까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자 황량한 길가로 나앉게 된다. 더불어 생존의 방식이었던 영아 살해는 숨길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범죄가 되어 맨몸을 드러낸다.

목숨이 질긴 탓에, 혹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 탓에 가슴 한구석 묵직한 죄의식을 숨겨놓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작가는 소설 속 굴참나무처럼 묵묵히 보듬는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무개가 배고파 아이를 뒷산에 묻었다더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름 돋았던 기억을 품고 있다.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느낌이란다. 그는 '어미가 자식을 죽이는 현상을 우리 현대인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를 화두로 붙잡았다. 그는 "한때는 생존의 방식이자 일종의 문화였던 영아 살해가 적어도 소설적으로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명두'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아니었다면 끄집어낼 수 없었을 화두다. 그는 "자기 세대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게 나이 든 소설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김미현 예심위원은 이 소설을 "치밀한 구성과 문체로 그려낸 한국 단편 문학의 교과서"라고 말했다. 구효서도 한 때는 실험적인 소설로 이름을 날렸다. 몸을 옥죄어오는 정석과 정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실험은 무언가를 모색하는 과정일 뿐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제대로 된 정통을 추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궁극적으로 교과서에 실릴 진짜 교과서적인 소설을 쓰는 게 그의 목표가 됐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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