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의 휴일은 썰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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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베를린장벽이 사실상 무너지고 처음 맞은 일요일인 12일 서베를린은 동에서 건너온 인파로 완전히「점령」당했다.
반면 분단의 벽 건너편 동베를린은 대부분의 상가를 철시하고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아「유령의 도시」를 연상케 했다. <관계기사 3,4,5면>이날 하룻 동안 거의 1백만에 육박하는 동베를린시민들이「분단의 벽」「냉전의 벽」「수치의 벽」을 뚫고 서베를린으로 휴일나들이를 나섰다. 이 때문에 서베를린의 전시가지는 온종일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
열린 관문을 통해 시민의 3분의1이 서베를린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동베를린은 우중충하게 낡은 건물들만이 빈 도시를 지키고 있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동베를린 중심으로 향하는 운터덴린덴가에는 국방색 제복차림의 인민경찰들의 모습만 간간이 눈에 띌 뿐 차량통행마저 뜸했다.
동독 반정부운동의 핵심인 노이에스포룸이 위치한 게세마네가9번지의 게세마네교회는 일요일인데도 문이 잠겨 있었다. 대신 문 앞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부상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회가 오후4시에 열린다는 현수막 하나가 을씨년스럽게 걸려있을 뿐이다.
택시마저 잡기 힘들만큼 통행이 뜸해 그 이유를 묻자 교회관리인인 호프만씨(52)는『택시운전사들이 서독정부가 동독인 입국자들에게 주는 1백 마르크 (약3만7천원)씩의 구호금을 받기 위해 대거 서베를린을「방문」한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관문마다에는 출국비자를 받으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3·5M높이의 큰크리트장벽이 쳐져있던 곳을 헐어 급조한 포츠다머플라츠관문에는 눈어림으로도 1천여명이 훨씬 넘는 긴 행렬이 늘어서 있다.
30여명의 인민경찰은 임시로 가설된 특별 신고소에서 여권이나 신분증을 내미는 사람들에게「VISUM」(비자) 이라고 ,쓰인 스탬프를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다. 한 사람당 5초도 안 걸리는 것 같았다.
동베를린 사람들이 이러한 도장하나만으로 서베를린으로 건너갈 수 있는데 반해서 베를린사람들은 동베를린으로 건너가는데 어려움이 많다. 정식으로 비자신청을 하고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에 관한 한 동·서의 입장이 완전히 역전된 꼴이다.
동·서베를린을 잇는 7개의 관문중 이날 새로 생긴 프츠다머플라츠관문과 11일 뚫린 2개의 관문 등 3개는 담을 헐어 급조한 것이고 나머지 4개는 기존의 관문. 이문들을 통해 서로 넘어간 동베를린의 시민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되어있지 않다. 아니 정확한 집계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동독당국은 일요일까지만 모두 2백60만명이 비자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서독매스컴은 지난 10일에 10만명, 11일에 80만명, 파일에 1백만명이 무너진 장벽을 통과했을 것으로 추정하고있다.
그러나 이들의 극소수만 서독에 정착하러 간 것이고 대부분은 한나절이나 하루정도 「자유의 도시」서베를린을 구경하러 나선 이른바 외출자들이다. 이 때문에 최근 3일간 동베를린시는 오전에는 설물처럼, 저녁때면 밀물처럼 오가는 일시적인 인구유동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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