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기증관' 후보지 왜 서울 용산 아니면 송현동인가?

중앙일보

입력 2021.07.07 16:35

업데이트 2021.07.07 17:34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을 위한 기본원칙 및 활용 기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을 위한 기본원칙 및 활용 기본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가칭 ‘이건희 기증관'(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 후보지를 서울 송현동과 용산으로 압축했다. 지난 4월 28일 삼성가 유가족이 2만3000여 점에 달하는 '이건희 컬렉션'을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으로 기증한 뒤, 각 지방자치단체의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이 뜨거웠으나 결국 '서울'로 정해진 것이다.

이런 결정은 문체부가 국립중앙박물관장,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당연직 위원 4명과 전문가들로 구성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가 10차례 논의를 거친 끝에 나왔다. 왜 서울이고, 또 그 중 용산과 송현동일까.

"기증품의 통합적 관리·조사·연구 중요"  

일단 박물관·미술관의 실질적 역할에 무게 중심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자체에서는 각 지역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과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지방 유치를 주장했으나, 박물관·미술관은 막대한 금액을 들여 건물을 짓는 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기증품의 통합적 관리·조사·연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7일 문체부 브리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연구와 관리였다"고 강조했다. 김 전 관장은 "유화부터 불상, 도자기까지 다양한 미술품을 보존ㆍ관리ㆍ전시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경험이 필요하다"면서 "인력의 한계로 국립중앙도서관 등 다른 전문기관의 협업이 필요하다. 기증품이 서울에 있어야 여러 가지로 원활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용산과 송현동, '문화적 장소' 시너지 극대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의 문체부 부지.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의 문체부 부지.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또 용산과 송현동은 다른 문화 인프라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송현동 부지 주위에는 경복궁과 인사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서울공예박물관(15일 개관)도 있다. 또 가까운 삼청동 인근에는 수십 개의 미술 갤러리가 자리 잡고 있다. 더 넓게는 창덕궁·덕수궁·남대문까지 문화 '고리'가 이어진다.

용산도 큰 가능성을 품고 있다. 현재 후보지에 오른 곳은 용산가족공원 내 문체부 소유 부지(용산동6가 168-6)로, 용산공원 조성 예정지와는 무관한 별도의 부지다.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이며, 국립한글박물관과도 가깝다. '이건희 콜렉션'의 또 다른 본산이라고 할 만한 삼성미술관 리움 외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용산역사박물관(2022년 개관 예정) 등 20여 개 박물관·미술관도 모여 있다. 문체부는 "용산 부지는 정부 땅이어서 별도의 부지 매입비가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송현동,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점 찍은 곳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미술관 부지로 매입했던 서울 송현동 부지. [사진 이은주]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미술관 부지로 매입했던 서울 송현동 부지. [사진 이은주]

송현동은 고 이건희 회장과의 인연이 있는 곳이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은 지난달 2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송현동 땅은 이건희 회장이 미술관 용지로 매입했던 곳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호재 회장은 "그곳은 1997년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염두에 두고 매입했으며,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에게 설계까지 맡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닥치고 대한항공으로 소유권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8년 이 부지를 인수한 대한항공은 최고급 호텔을 지을 계획이었지만 인허가를 놓고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와 갈등을 빚었고, 현재는 서울시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송현동 부지에 미술관을 지으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한항공으로부터 이 땅을 사고, LH는 이 땅을 서울시의 시유지와 맞바꾸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고미술품과 근현대미술 한자리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정부가 용산이든 송현동이든 '서울'로 낙점한 것에 대해 "삼성미술관 리움과의 연계 가능성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 전 청장은 "'이건희 컬렉션'은 사실상 리움의 소장품 중 일부를 떼어 국가에 기증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고미술이든, 근현대미술이든 기증품 모두 리움 소장품과 한 덩어리로 보는 것이 맞다. 그 연계성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건희 기증관'처럼, 한 개인의 기증을 계기로 중앙정부가 나서 별도의 시설을 만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국박은 4900여점의 유물을 기증한 동원 이홍근(1900~1980) 선생의 ‘이홍근실’을 비롯해 기증자들의 이름을 딴 전시실, 기증된 문화재들을 엄선해 선보이는 기증문화재실 등을 운영해왔다.

고미술과 근현대미술을 한데 아우르는 국가 문화시설이 생기는 것도 초유의 일이다. 일각에서는 "고미술품부터 현대미술품을 모두 한곳에 모으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닌 '만물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도 거셌다.
그러나 황희 문체부 장관은 “하나로 통합한 뮤지엄이 기증자의 정신과 철학을 알리는 데 적합하다"고 밝혔다.
박명순 문체부 지역문화정책관은 “미국 LA에 있는 게티 뮤지엄도 고대 미술품부터 현대미술품까지 모두 아울러 보여준다”면서 “오히려 한데 모아짐으로써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국내에선 국박과 국현으로 나뉘어져 있어 통합적인 전시가 부족한 면도 없지 않았다. ‘이건희 기증관’ 건립이 오히려 통섭 전시를 위해서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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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는 향후 최종 부지 선정을 거쳐 2027~2028년쯤 '이건희 기증관' 건립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이달 21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각각 ‘국가 기증 이건희 기증품 특별 공개전’을 동시 개막하고 내년 4월 1주년 특별전을 연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연 3회 이상 지역별 대표 박물관ㆍ미술관 순회 전시를 순차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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