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도시? 답은 숲" 건축가 이일훈 폐암 투병끝 별세

중앙일보

입력 2021.07.04 10:37

업데이트 2021.07.04 10:42

[사진 서해문집]

[사진 서해문집]

'불편하게 살기, 밖에 살기, (동선) 늘려 살기'로 요약되는 '채 나눔' 건축론을 주창해온 건축가 이일훈(후리건축연구소 대표) 씨가 2일 오후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세.

불편하게 살기 '채 나눔' 건축론
도시,손대지 않는 자연 공간 필요
"풍경은 공공자산" 경관의 공동성 강조

1954년생인 고인은 1978년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한 뒤 1984년 건축잡지 '꾸밈'을 통해 건축 평론가로 등단했다. 김중업 건축연구소를 거쳐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열었다.

그가 평생 일하며 줄기차게 주창해온 '채 나눔' 이론은 이를테면 '편하게만, 안에서만, 좁혀서만' 사는 삶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건물처럼 한 공간에 모든 것이 집약된 집은 편리하지만 건강하지 않다는 뜻.

'채 나눔'은 집을 세는 단위인 '채'를 '나누다'의 명사형과 합한 말로, '공간이 작을수록 형태적으로 나누자'라는 의미다. 구체적으론 방과 방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구조를 가리킨다.

'채 나눔' 실천의 첫 번째 덕목은 '불편하게 살기'로, "환경, 공해 문제는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것의 후유증"이므로 건전하게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불편함은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두 번째는 '밖에 살기'로 될 수 있으면 자연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바깥 공간을 만들자는 의미다. 세 번째는 '(동선) 늘려 살기'다. 동선을 늘려야 공간이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주장했다.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사진 건축사진가 서삼종]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사진 건축사진가 서삼종]

2011년 펴낸 저서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2011, 사문난적)도 생태·환경에 대한 남다른 성찰을 담아 주목받았다. '숲에서 배우는 지혜로 도시를 생각하자'는 제안을 담은 이 책에서 그는 획일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생리를 존중하는 것이 도시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공원이란 무조건 뭔가를 만들어 채우고 설치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살펴 생태적 연결고리를 살리는 것이 진정한 '자연 돌보기'라는 것.

통일 이후 비무장지대를 '비개발지대'로 보존하자고도 제안했다. 오랜 세월 자연 생태의 보고가 된 이 곳은 위험한 군사시설과 지뢰를 제거하는 모습으로 전세계에 보여 평화를 웅변하는 땅, 철학과 지혜의 상징인 숲으로 변신시키자고 했다.

고인은 1998년 인천 동구 만석동 달동네에 저예산으로 만든 지상 3층, 연면적 45평의 '기찻길 옆 공부방'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역 사랑방으로 만들려고 마당을 둘러싼 회랑을 집어넣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밝맑도서관', 재활용 포장으로 울퉁불퉁한 땅바닥과 쓰레기를 태워 에너지를 얻는 '분자로'를 담은 경기 가평군 '우리 안의 미래 연수원', 그리고 청년사 등 출판사 사옥,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자비의 침묵 수도원' 등 다수의 종교 건축물을 설계했다.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사진 건축사진가 진효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사진 건축사진가 진효숙]

자비의 침묵 수도원. [사진 진효숙]

자비의 침묵 수도원. [사진 진효숙]

저서로 건축산문집 『모형 속을 걷다』(2005, 솔), 건축백서 『불편을 위하여』(2008, 키와채), 『뒷산이 하하하』(2011, 하늘아래)『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2013, 서해문집)등이 있다. 특히 건축주 송승훈씨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경기도 남양주에 지은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낡은 책으로 채운 거친 돌집)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 『제가 살고 싶은 집은』(2012, 서해문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빈소는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203호, 발인은 5일 오전 4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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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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