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인 붓질은 안된다...실험은 평생 하는 것" 이강소 화백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13:00

업데이트 2021.06.30 13:23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몽유'를 열고 있는 이강소 화백. [사진 갤러리현대]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몽유'를 열고 있는 이강소 화백. [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 청명-17127, 2017, 캔버스에 아크릴, 116.7 x 91 cm.[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 청명-17127, 2017, 캔버스에 아크릴, 116.7 x 91 cm.[사진 갤러리현대]

60년 가까이 그림을 그려온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습관적인 붓질"이라고 했다. "그리기 위해 그리는 것, 자기만의 새로운 해석이 없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그림이란 끊임없이 유동하는 세계를 담아내야 하고, 관습에서 벗어난 붓질로 작가와 관람객이 함께 새롭게 경험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강소(78) 화백 얘기다.

갤러리현대, 개인전 '몽유'
기운생동 회화 30점 선보여
관습에 도전해온 여정 조망
화면에 담은 기운생동 에너지

갤러리현대에서 이강소 화백의 개인전 '몽유(夢遊)'가 열리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21년까지 완성한 회화 30여 점을 소개한다. 추상적 붓질로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부터 서예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노톤 그림, 형형색색 화려한 색을 사용한 신작까지 함께 선보인다. 2018년 같은 공간에서 열린 전시 '소멸'이 작가의 1970년대 역사적 실험미술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면, 이번 전시는 평생에 걸친 '실험'으로 미술의 고정관념에 도전해온 작가가 평면 회화에서 이어온 탐구의 여정을 한눈에 보여준다.

"실험은 평생 하는 것"  

 이강소, 소멸 ( 선술집 ), 1973, 퍼포먼스 , 명동화랑 ,[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 소멸 ( 선술집 ), 1973, 퍼포먼스 , 명동화랑 ,[사진 갤러리현대]

2018년 '소멸'전에서 재연한 '소멸(선술집)' 퍼포먼스. [사진 갤러리현대]

2018년 '소멸'전에서 재연한 '소멸(선술집)' 퍼포먼스. [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는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실험 미술을 이끌어온 주역으로 꼽힌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설치,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판화, 회화, 조각 등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작업해왔다.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 차린 '소멸(선술집)'은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기울였던 공간을 재연한 퍼포먼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때 한 공간에서 왁자지껄한 소음과 함께 다양한 사람들을 품었던 선술집의 '기억'을 나무 테이블과 의자, 막걸리, 팔각 성냥갑 등의 설치로 소환한 작품이었다.

"실험은 평생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1980년대 흙을 던져서 하는 조각을 선보이는 등 전통적인 개념에 도전하는 조각 작품도 꾸준히 선보였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어떨까. 자유롭고 거친 붓질로 회화와 서예, 구상과 추상 사이를 넘나드는 화면이 그가 찾은 답이다.

필획, 기운생동(氣韻生動)  

 이강소,청명-20046,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30.3 x 162 cm.[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청명-20046,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30.3 x 162 cm.[사진 갤러리현대]

"우리가 지금 보고 경험하는 세계가 어쩌면 가상의 현실일 수 있어요. 장자가 말한 '나비의 꿈'처럼요. 끊임없이 유동하는 세계에서 만물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서로 관계를 맺고 있죠. 신기하게도 현대 서양 물리학이 찾아낸 '양자역학' 이론이 사실상 전통적인 동양사상과 통합니다. 저는 그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에너지를 화면에 드러내고 싶었죠."

1990년대 중후반 '섬에서', '강에서' 등의 연작을 거쳐 2000년대 중반 '샹그릴라', '허(虛· Emptiness)' 등의 작업을 했던 그는 2010년대부터 현재까지 '청명(Serenity)' 연작을 이어가고 있다. 대담한 여백, 작가 자신의 호흡과 리듬, 몸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간직한 강렬한 획으로 캔버스를 완성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가 바로 "동양화 붓"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양화 붓보다 길어 붓질하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란다.

"어린이들이 천진난만하게 그은 선, 추사의 갈필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죠. 붓의 끝이 그렇게나 민감해요. 붓끝에 물감이 잔뜩 묻어있다고 해서 강력한 게 아니거든요. 옅게 스며든 먹물이라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굉장히 강렬한 기운을 드러낼 수 있죠. "

이 화백은 "그 에너지가 바로 기운생동"이라며 "모든 것은 결국 기 에너지로 귀결된다. 필력, 필획이 그리는 사람의 정신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그가 그림에서 획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색에 매혹되다  

이강소, 청명-20018,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12 x145.5 cm.j[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 청명-20018,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12 x145.5 cm.j[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 청명-17122, 2017,캔버스에 아크릴, 117 x 91 cm.[사진 갤러리현대]

이강소, 청명-17122, 2017,캔버스에 아크릴, 117 x 91 cm.[사진 갤러리현대]

이번 전시는 그가 과감하게 색채를 쓴 신작을 처음 선보였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기운생동을 보다 잘 드러내고, 이미지 자체에 더 집중하기 위해 색을 자제해 써왔던 터. 그러나 "20년 전 사둔 아크릴 물감을 우연히 꺼내 칠해보고 색에 매혹당했다"고 했다. 그가 모노톤 회화에 집중하는 동안 그의 힘찬 붓질에 숨죽이고 있던 색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올 순간을 기다려온 것일까. 맑고 투명한 주홍과 푸른빛은 캔버스에서 그의 붓질을 통해 생동감 있게 물결친다. 미술사학자 송희경 이화여대 교수는 이런 그의 그림을 "초여름의 상쾌한 바람처럼 은은하고, 역동적이면서도 평온한 분위기의 회화가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멈추지 않는 실험은 팔순을 앞둔 그에게 또 다른 기회를 안겨줬다. 내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함께 준비 중인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 미술' 전시에 참여작가로 선정된 것. "나를 유혹하는 색을 찾아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그는 "작가도 계속 변하지 않으면 골동품이 된다.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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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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