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과주말을] 고리타분한 서양미술사여, 안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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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 학고재
328쪽, 9800원

"학교 다닐 때 서양미술사를 이런 식으로 공부했다면 절대로 졸지 않았을 거예요" "완전 공감! 매번 읽지만 그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손가락 하나로 높다란 미술의 벽을 무너뜨리셨소!" 네티즌이 단 덧글만 봐도 무슨 책일까 호기심이 인다. "(미술을 보는) 새로운 눈이 돋아나는" 경험을 했을 만큼 300만 블로거를 열광케 한 비결은 무엇일까. 만화 형식을 빌린 '그림 드라마(Pictorial Drama)'다. 눈에 익은 명화에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곁들여 풀어가는 재치가 필명 그대로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 샐러드 맛이다.

이 '그림 드라마'의 주인공은 '우울해(우울의 바다)'에 빠진 손가락과 먹이를 유인할 초롱 빛이 꺼져 죽어가는 아귀, 둘이다. 그림을 못 보면 굶어 죽게 된 아귀를 위해 손가락은 열두 편의 그림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밀레이의 '눈 먼 소녀'와 '오필리어', 브뢰겔의 '이카로스가 떨어진 곳의 풍경', 마그리트의 '새를 먹는 소녀' 등 이미 풍부한 도상 해석과 평가가 내려진 그림을 뒤집어 보이는 솜씨가 놀랍다. '그림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감탄하게 되는 배경에는 작가(본명 윤명진)의 속내가 있다. "일부러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만 했다. 대안 같은 건 없어도 좋으니 같이 눈물 흘릴 뭔가가 필요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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