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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흉부외과 수술에 필요한 최신 재료, 국내 반입 쉽도록 제도 개선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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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김웅한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은 “생명을 살리는 흉부외과의 발전은 혁신적인 치료재료의 개발과 궤를 같이한다”며 “환자가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첨단 제품의 국내 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하 객원기자

김웅한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은 “생명을 살리는 흉부외과의 발전은 혁신적인 치료재료의 개발과 궤를 같이한다”며 “환자가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첨단 제품의 국내 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하 객원기자

 흉부외과 수술장에서의 치료재료 선택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수술 등에 꼭 필요한 첨단 치료재료가 제때 들어오지 못해 오래된 제품을 수술에 쓰기도 한다. 흉부외과 의료 행위가 필수 의료에 해당해 건강보험 도입 초기부터 치료재료 보험가가 낮게 책정돼 있고, 그 결과 최신 기술이 반영된 신제품 도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은 구모델의 재고 처리장”이라는 한탄이 나온다. 김웅한(서울대 의대 흉부외과학교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을 만나 국내 흉부외과 수술장의 열악한 치료재료 환경과 개선 방향을 들었다.

인터뷰-김웅한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이사장

한국 흉부외과 수술장이 구모델의 재고 처리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국내에 첨단 제품이 들어와 환자에게 사용되기까지 승인 절차 장벽이 지나치게 높고 까다롭다. 전 세계에서 안전성·효과를 입증받아 활발히 쓰이는 치료재료여도 국내에 들어오려면 다시 이를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흉부외과는 환자 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정부가 요구하는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시험(RCT) 같은 근거를 내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초중증 환자에게 쓰이는 재료이다 보니 최신 기술이 집약돼 기존 제품이 차세대 제품으로 끊임없이 대체되고 있다. 따라서 수많은 절차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이미 옛날 제품이 되어버린다. 항상 이렇게 처진다. 결국 다른 나라에선 최첨단 제품을 쓰고, 국내는 옛날 제품을 재고 처리하는 상황이 돼버리고 있다. 그러다 더는 해당 제품을 쓰는 곳이 한국밖에 없으면 업체가 단종시킨다. 그러면 그제야 새로운 제품이 들어오는 식이다. 이때 또 가격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인공 판막, 판막 성형술용 링 등 흉부외과 치료재료의 국내 보험가는 미국·일본 등의 30~60% 수준으로 낮다.”
 -재료 수가가 낮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 업체가 있나.
 “선천성 심장병 소아용 인공혈관을 공급하는 고어사가 2017년 철수했던 사건이 있었다. 고어사의 인공혈관 가격 국내 수가가 20년째 동결됐고, 고어사는 2년의 유예기간을 통보한 뒤 한국에서 철수했다. 전 세계의 2%밖에 차지하지 않는 한국 시장에서 중국의 3분의 1 가격에 불과한 가격으로 공급하면 시장 균형이 깨진다는 게 이유였다. 인공혈관이 없어 소아 환자들이 수술받지 못한 상황이 돼서야 정부가 나섰다. 그러나 지금도 의료 현장에선 제품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첨단 제품에 적정 가격을 지급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면 고어사 철수 같은 사태가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
 -정부에서 긴급하게 필요한 물품은 공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를 국가가 공급하는 체계를 구축해 긴급한 경우 치료재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는 있지만, 제한이 많다. 임시방편이다.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을 하는 분야다. 긴급하게 응급으로 써야 하는 첨단 재료를 다양하게 갖추고 제때 써야 한다. 환자가 사망하지 않을 만큼 최소한으로 겨우 공급하는 건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해 사용 승인을 내려 환자에게 바로 쓸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전문가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
 -첨단 재료를 제때 쓸 수 없을 때 환자에게 가는 피해는.
 “환자 입장에서 수술을 안 해도 될 것을 해야 하고, 약을 안 먹어도 될 걸 먹어야 한다. 고어사에서 나오는 치료재료 중 심장판막 성형술에 쓰이는 특수실인 봉합사가 있다. 판막을 갈지 않고 성형해 기능을 유지하면서 10년 이상 쓸 수 있도록 해준다. 판막을 교체하면 평생 항응고제를 먹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교체 수술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판막 성형을 하면 본인 것을 건강하게 쓸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실의 종류는 가는 실부터 굵은 실까지 다양하다. 고어사가 국내에 있었으면 의료진이 환자에게 적합한 실을 그때그때 적용할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하는 실정이다. 주기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신청하면 정부 예산 내에서 우선순위를 따져 제한적으로 구매해 주기는 하나 당장 써야 하는 수술에는 그렇게 기다리지 못한다. 나이 들어 판막이 노화해 힘줄이 하나 끊어졌을 때 특수실로 즉시 대체해 주면 되지만 이런 조치를 바로 취하지 못하면 판막을 교체해야 한다.”
 -제품의 국내 도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나.
 “그렇다. 예컨대 선천적으로 혈관이 없이 태어난 아이들에겐 인조혈관을 이식했다가 아이가 성장하면 교체해 주는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하버드 의대에서 사용하는 첨단 재료 중 하나는 아이가 성장한 이후에도 교체 수술 없이 인조혈관을 풍선처럼 늘려서 사용하는 제품이다. 국내에 들여오고 싶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수많은 환자의 10년 데이터를 제출하라고 한다. 그런 자료는 현재 없다. 한국의 흉부외과 수술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국민이 요구하는 의료 수준도 굉장히 높다. 그런데 의료 물품이 따라가질 못한다.”
 -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로서 제언은.
 “치료재료와 기구들의 발전이 곧 흉부외과 의료 기술의 발전이다. 일본의 경우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해 의료진이 필요로 하면 승인해 준다. 대만은 환자에게 첨단 치료재료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의료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좋은 제품을 써서 환자에게 더 나은 결과를 주는 안전한 수술을 하고 싶다. 흉부외과는 현재 비인기과로 전공의 지원자가 없어 교수가 한번 수술하면 수술한 환자를 보느라 3일 밤을 새워야 하는 실정이다. 보람과 사명감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부실한 치료재료 환경 때문에 수술에만 집중할 수도 없어 고충이 더 크다. 우리 환자 심장에 더는 구식 제품을 쓰는 걸 볼 수 없다. 환자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는 다양한 최신 치료 재료가 들어올 수 있게 벽을 낮춰줘야 한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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