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이게도, 현재 야권의 대선 주자로 호명되는 이들을 키운 건 문재인 정부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얘기다. 셋은 정부 출범 초기 ‘우리 사람’으로 칭송받다가 수사가, 감사가, 경제정책 비판이 여권을 향하자 그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힌 공통점이 있다.
야권 대선 후보로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윤 전 총장은 오는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최 원장도 빠르면 28일 감사원장직을 사퇴한 뒤 정치선언을 한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최 원장은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뒤 야권의 대안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잠룡’ 김 전 총리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개 구애’에 “그 분 생각일뿐”이라며 여권과 선을 그으면서 야권 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셋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화려하게 임명됐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다섯 기수를 건너뛰는 파격 인사로 윤 전 총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고, 2019년 7월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는 그를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검사)”라며 치켜 세웠다. 2018년 1월 최 원장 임명 땐 “스스로 자신을 엄격히 관리해 오셨다”며 감사원장에 적격이라고 했다. 2017년 5월 김 전 부총리 임명하면서는 “청계천 판자집의 소년가장에서 출발”했다며 그의 성공 스토리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문재인 정부에 각을 세우는 쪽에 서 있다. 정치사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정부 인사들은 보통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속한 정당의 선거 후보로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문 대통령도 노무현 청와대 출신이다. 과거 정동영 후보는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이었고, 이회창 후보는 김영삼 정부의 감사원장·국무총리였다.
현 정부 출신 인사가 되레 야권의 환영을 받는 건, 그들이 원칙을 지키다가 정부·여당의 탄압을 받았다고 야권 지지들이 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땐 여당의 환호를 받았던 윤 전 총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시작하면서 여당의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사상 초유의 2개월 정직 처분 등의 논란 끝에 지난 3월 사의를 표명한 윤 전 총장이 남긴 말은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였다.
최 원장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폐쇄 감사 과정에서 여당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받았다. 정부에 불리한 감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시점이었다. 결국 “조기폐쇄의 근거가 된 경제성 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내용으로 탈원전 정책에 흠짓이 남는 감사 결과가 나왔다. 김 전 부총리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비판적인 뜻을 보였다가 청와대와 여당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결국 교체됐다.
그러면서 이들은 야권에서 원칙과 법치, 공정을 상징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청와대는 현 정부 인사가 야권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데 불편한 모습이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는 25일 라디오에 출연해 윤 전 총장과 최 원장에 대해 “검찰총장과 감사원장 자리가 임기제인 이유는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임기를 채우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게 저희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 원장에 대해선 “우리 사회에 큰 어른으로 남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