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지금 우리나라에는 미력하나마 한국영화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영화진흥공사와 영화평론가협회가 매달 공동으로 개최하는 「한국영화감상회」와 인하대가 매주 여는 「인하금요영화감상」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2년여 동안 테마별로 매달 2∼4편씩 14회에 걸쳐 실시해온 「한국영화감상회」는 영화를 만든 주요 스태프와 주연 및 평론가들이 참여하여 감상 후 일반관객과 대화의 모임을 갖는 형식으로 진행되고있고, 「인하금요영화감상」은 해방직후의 『자유만세』(1946년)를 비롯해 최근작인 『칠수와 만수』에 이르기까지 3년여 동안 40여편을 골라 관계 감독이나 작가·촬영기사·연기자 또는 평론가들을 초청, 강연과 함께 토론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몇 달 전 영화진흥공사가 영화평론가들에게 「한국영화베스트 100」(1923∼1989) 선정을 의뢰하고 집필케 한 것도 앞의 재평가 모임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사에는 공통적으로 따르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자료의존상태의 미비와 보존불량으로 인해 작품선택의 폭이 매우 좁다는 점이다. 그래서 재평가에 앞서 보존·정리라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 영화진흥공사필름보관소가 관리하고 있는 영화들 가운데는 해방 전 작품은 물론 60년대의 『만추』『비무장지대』와 같은 가작마저 찾아볼 수 없다. 겨우 광복기의 『자유만세』『검사와 여선생』과 같은 2편의 40년대 작품과 『운명의 손』『피아골』을 비롯한 50
년대 이후의 작품이 네가 필름 또는 프린트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모든 예술이 가차없는 질타와 활발한 토론을 통해 거듭나고 그 성찰의 토대 위에서 존재가치를 인정받듯이 재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 영화란 아무 의미가 없다. 한나라의 고전은 연륜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 한 시대의 특징과 삶의 모습이 진실되게 투영될 때만이 비로소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점에서 한국영화의 재평가작업은 고전을 만들고 축적된 결실 아래서 비전을 제시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을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전제돼야할 것은 관객의 반응이나 비평가의 사심 없는 분석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발전을 앞당기는 성찰의 계기로 삼는 의식의 전환이다.
시류에 편승해 만들어진 영화는 결코 좋은 작품일 수가 없다. 시대정신과 진취적인 형식미가 반영된 영화만이 예술의 품격을 지닌 명화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나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의 경우처럼 인생과 예술에 충실할 때만이 문학유산으로서의 무게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영화감상회」(영화진홍공사)와 「인하금요영화감상」은 한국영화의 재평가 기회를 마련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라고 할 수 있다.
김종원 <영화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