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에 김주영 「신귀거래사」 신드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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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 자신의 내면에 더 이상 글을 써나갈 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내 50살의 분별력으로 확인했다. 낙향해 글이나 정신노동과는 거리가 먼 육체노동의 즐거움을 찾겠다.』
80년대를 마감하는 늦가을 뚝심 있는 작가 김주영씨가 돌연 붓을 꺽으며 내놓은 「신귀거래사」가 혹독한 도시의 삶을 버텨나가는 뭇사람들의 마음을 말할 수 없이 흔들어 놓고 있다. 『나도 하루에 12번을 김씨와 같은 꿈을 꿔봤다』며 문인들은 물론 정신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 모두가 귀거래사 신드롬을 내비치고있다.
○…『그런 말하기에는 너무 어리기에 꾹꾹 참아왔는데 내 할말 주영이형이 다했다. 탈진되지 않도록 자기관리를 해야하지만 신문·방송·잡지·출판사 등등에 신세진 사람들이 한 사람씩은 있게 마련인데 그들이 청탁해오는 원고를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작가 이문열씨는 자신도 쉬고싶은 생각은 굴뚝같다며 독자층을 확보한 일부 인기작가에만 청탁이 쇄도하는, 수요가 있으면 공장의 기계가 아니라 작가의 머리를 짜내고 피를 말려야하는, 자본주의문화형태를 원망했다.
○…『소진된 상태에서 문학에 대한 진실성을 따라갈 수 없다』. 작가로서 문학의 진실성에 대한 외경심으로 중도하차 한다는 김씨의 절필이유 한 부분은 그러나 남은 작가들에게 심적 부담감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50줄에 접어들면 누구든 자기 일에 대한 두려움이 든다. 그때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하자보수도 하고 상상력도 재충전하는 것 아닌가. 글을 떠나도 작가는 작가 아닌가. 외압이 아니라 순수한 내면적 동기에서는 절필선언 같은 쇼킹요법을 쓰는 게 아닌데….』
문학의 진실성에 대한 외경심이 어느 작가에게는 없겠는가. 소진된 상태에서 그래도 버텨나가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의 찌꺼기일지라도 거짓일 수는 없다는 한 작가의 볼멘 소리다.
○…그러나 작가 김씨는 신문연재 등 계약된 원고 때문에 절필을 밝히지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7년 연재계약의 중도하차로 인한 새 작가를 구하기 위해 최소한 2개월의 여유를 주어야했기 때문에 절필사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현재 계약된 집필을 위해 서울에 머무르고 있으나 기자들과의 대화는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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