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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원자재·식품 다 오른다…인플레 시한폭탄 위의 세계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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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표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벌리힐스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표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자고 나면 오른다. 국제유가 이야기다. 8일(현지시간) 서부텍사스유(WTI)는 전날보다 1.2% 상승한 배럴당 70.0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값이 70달러를 넘은 건 지난 2018년 10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지난 1일엔 브렌트유가 배럴당 70.25달러로 거래를 마감하며 2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석유·원자재·곡물값 일제히 상승…금융위기 이후 처음  

지난 2019년 브라질의 한 대두 농장 모습.[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9년 브라질의 한 대두 농장 모습.[로이터=연합뉴스]

기름값만 오르는 게 아니다. 원자재 가격도 최고가 행진 중이다. 자동차부터 가전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 쓰이는 구리는 지난달 초 10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철광석은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지난달 12일 t당 237.58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3년 전만 해도 철광석 가격은 평균 69.65달러에 머물렀다. 옥수수와 대두, 밀은 지난달 8년 만에 최고 가격을 기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유와 원자재, 곡물 같은 상품가격이 일제히 상승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197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상품 가격의 상승은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수 있다. 상품 생산부터 유통·판매에 이르는 단계별 비용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 13년만에 최고.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중국 생산자물가지수(PPI) 13년만에 최고.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런 우려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물가가 오르고 있다.

9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5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해 같은달 보다 9.0%나 상승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진행 중이던 2008년 9월(9.1%)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블룸버그·로이터 통신 등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8.5%)보다도 높았다. 지난 1월 0.3%에 불과했던 중국의 PPI 상승률은 2월 1.7%, 3월 4.4%, 4월 6.8% 등으로 점점 가팔라지고 있다.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1년 전보다 4.2% 상승하며 2008년 9월(4.9%)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시장에선 10일(현지시간) 발표되는 5월 CPI도 4.7% 수준으로 전망한다.

커지는 원자재발 인플레 공포

지난 2017년 베트남 하노이 북부의 한 공장에서 구리 케이블이 진열돼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7년 베트남 하노이 북부의 한 공장에서 구리 케이블이 진열돼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원자재발 가격 상승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건 인플레이션 공포 때문이다. WSJ은 “상품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현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며 세계 경제 회복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걱정이 고개를 드는 건 40년 전 경험 탓이다. 당시 세계 경제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과 오일쇼크 등의 악재가 겹치며 대규모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특히 미국은 1970~80년대 물가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넘었다. 뒤늦게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연 20%대까지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며 인플레이션을 잠재울 수 있었다. 대신 주택·고용 시장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문제는 상품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데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경기를 되살리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쏟아낸 유동성이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시중에 넘쳐나는 돈이 급격한 경기 회복 흐름과 만나면 인플레이션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

"Fed가 인플레에 눈감아 세계 경제 시한폭탄 맞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로이터=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로이터=연합뉴스]

원유부터 원자재, 식료품까지 인플레이션 압력은 커지고 있지만 Fed는 '인플레 파이터'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고 있다. 현재의 물가 상승 흐름이 코로나19 기저효과와 공급망 차질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판단하는 눈치다. 게다가 급작스러운 긴축 모드로의 전환이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는 듯하다.

Fed가 머뭇거리는 사이 인플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도이체방크 경제분석팀은 7일 분석보고서에서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대응이 늦어져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상당한 후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라며 “Fed가 인플레이션을 무시해 세계 경제가 시한폭탄을 깔고 앉아 있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Fed가 기존 방침대로 2023년에나 금리 인상을 한다면 대응이 너무 늦다”며 “이로 인해 심각한 경기침체가 초래되고, 특히 신흥국과 저소득층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 고문도 “역사적으로 Fed가 뒤늦게 대응하면 경기 침체가 뒤따랐다”며 “Fed가 늦게 급제동을 거는 상황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Fed의 시각에 동조하는 곳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인플레이션 우려가 과민 반응이거나 이미 시장에 반영됐을 수 있다”며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통화정책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닌 성장 과정에서 나오는 좋은 인플레이션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Fed도 상황은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미 CNBC는 “지난 몇 주 동안 Fed 관계자들 발언으로 볼 때 오는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자산매입 축소를 시행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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