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3월 4일 총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취재진 앞에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낸 건 딱 한 번이다.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위해 지난 4월 2일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함께 투표소에 등장한 것이다. 당시 그는 “대권 행보로 봐도 되느냐”는 식의 정치 관련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尹, 석 달 동안 딱 한 번 취재진 앞에 서
석 달 동안 윤 전 총장이 주어가 되는 공식 메시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을 앞둔 지난달 16일, 현충일 즈음인 지난 5일과 6일 K-9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자 이찬호(27)씨와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 전준영(34)씨를 각각 만났을 때 나왔다. 지난 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은 뒤에는 방명록에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썼다. 5·18과 현충일, 여느 정치인이든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날에 맞춰 메시지를 낸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 19일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시작으로 정승국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노동),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외교안보),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장(자영업),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반도체) 등 각 분야 전문가를 만났을 때는 일부 언론을 통해 먼저 소식이 알려진 뒤 다른 언론이 뒤따라가는 형식이었다. 윤 전 총장의 발언도 그를 만난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방식이었다.
국민의힘 의원 연쇄 접촉 뒤 전언(傳言) 쏟아져
그러한 전언(傳言)은 최근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 소속 권성동·정진석·윤희숙 의원 등을 연쇄 접촉한 뒤 더 잦아졌다. 대선 출마뿐 아니라 국민의힘 입당 여부에 대해서도 ‘측근’ 또는 ‘최측근’의 전언을 통한 발언이 쏟아졌고 방향도 오락가락이었다.
특히, 요양급여 부정수급 혐의로 기소된 윤 전 총장의 장모 최모씨와 관련한 ‘10원’ 발언을 두고는 혼선이 빚어졌다. 윤 전 총장이 지난달 26일 정진석 의원과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내 장모가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를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정 의원이 지난 1일 전했는데, 이를 두고 여권의 공격이 이어지자 윤 전 총장 측이 해당 발언에 대해 “와전됐다”고 해명하는 일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7일 국민의힘에서도 윤 전 총장의 이런 행보에 대한 공개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선에 출마하려는 원희룡 제주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별의 순간과 윤석열의 침묵’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원 지사는 이 글에서 최근 검찰 상황과 관련해 “(윤 전 총장은) 사법정의를 파괴하고 있는 김오수 검찰총장과 일부 정치 검찰에 맞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후배 검사들의 분노가 보이지 않느냐”며 “혹시 오로지 별이 되기 위해 별의 순간을 택한 것은 아니겠지요”라고 비판했다. 그런 뒤 “이 부조리 앞에 정치공학의 침묵으로 일관하지 말라. 당당했던 총장님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당내에선 이른바 ‘전언 행보’를 끝내고 국민 앞에 직접 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본인을 위해서나 야권 전체를 위해서 윤 전 총장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잠행을 끝내고 국민과 언론 앞에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도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한 이후 계속 ‘전언 행보’를 하고 있지 않느냐”며 “피로감이 쌓일 뿐만 아니라 ‘10원’ 발언처럼 상대방에 공격할 빌미를 주는 부작용이 생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선 윤 전 총장의 입장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민의힘 당직자는 “검사에서 정치인으로 인생 행로가 바뀌는 데 대한 두려움과 검증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것”이라며 “본인이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비주의, 리더십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달리 단기간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 새로운 관점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계속 신비주의로 가겠다는 건 리더십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 시점이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국민에게 평가받고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